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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아까운 내 돈은 어디로 [249] 본문
최인태의 세상이야기 T스토리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1977년 연대본부 경계병으로 선발되어 3개조가 24시간씩 교대로 근무합니다.
저는 C조에 속해서 12명이 함께 근무합니다만 12명이 모두 출근한적이 한번도 없었구요.
최고참 2명은 얼굴 한번 못보았습니다.
그러니까 12명중에 10명이 근무하는데 조장 1명은 제외 또 근무날 마다 고참 1명은 무조건 출근하지 않더군요.
그래도 모두 정상 근무 처리됩니다.
결국은 8명이 교대로 24시간 경계 근무합니다.
주간에는 위병소와 탄약고 그리고 야간에는 유류고가 추가되어 3곳에서 보초를 서게 됩니다
낮에는 2시간씩 근무해서 나머지 병력은 모두 노역병으로 삽질을 하거나 기타 잡일을 하게됩니다.
3교대이므로 한달에 약 10번 출근합니다.
세번째 출근하니 선임병이 부르네요.
야 너 다음 근무날 일요일이니깐 천원만 가지고 오라네요.
이유는 묻지 말라고 합니다.
3일후 출근하니 선임병이 돈을 달라합니다.
즉 빌려 달라는 형식을 취하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갚아 준다면서 걱정말라하네요.
그런데 저만 그런게 아니고 동기생에게도 똑같이 돈을 가져갑니다.
이유는 이러합니다.
당시 부대는 예비군 관리 부대로 사병 약 1개중대 병력에 장교는 약 10여명에 하사관은 2명인데 1명은 말뚝 이고 다른 하나는 물하사로 하사관학교 졸업후 이곳으로 전출되어왔더군요.
그외 방위병은 약 50여명이 정도이구요.
그런데 이 말뚝 하사 새끼가 일요일날 외출 외박나가면 돈이 필요하니 우리에게 거의 강탈하네요..
돈이 모자라면 그날은 정말 골치 아파집니다.
결국은 구타로 연결되겠지요.
얻어 맞기 싫어서 중간 선임들이 혈안이 됩니다.
당시 천원이면 공사장 잡부의 일당이 천원에서 천오백원 정도 였으니까 지금의 일당으로 비교하면 약 15만원에서 20만원정도 입니다.
이 말뚝 새끼가 새로 전입 되어 오는 병사는 한명도 건너 띄지 않고 100% 받아 가로 채더라구요.
이유는 너희는 집에서 편하게 출퇴근하면서 근무해서 그런다네요.
개시키 이놈 이름이 박 * 회 하사입니다.
경상도 부산 놈으로 사투리 억양이 너무 강해서 잘 알아 듣지 못할 정도 입니다.
지금쯤 잘 처먹고 잘 살겠지요?
하사 계급이어도 당시 내 나이는 24살이였으니까 저보다는 어린 나이일겁니다.
1974년의 일입니다.
당시에 함께 일하던 사람이 본인의 집을 지었습니다.
땅을 사고 블럭을 쌓은 후 지붕은 철콘으로 하였습니다.
사실 사장님 집이였습니다.
사장과 아랫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냥 해달라고 하는 바램이 강했구요.
그래서 같이 일하던 몇 몇 사람들이 합의 했습니다.
며칠은 돈을 받지 않고 그냥 서로 돕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집이 다 지어지도록 거의 우리가 일을 하였습니다.
점심밥도 도시락으로 집에서 직접 준비해갔구요.
거의 한달 가까이 일을 하였습니다.
집이 완공되고 그해 겨울 우리는 돈을 달라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자식이 벌어서 준다네요.
아주 배 째라입니다.
아니 당장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요.
겨울이 되어 어디 일할곳도 없는데 말입니다.
결국은 10원 한장 받지 못했습니다.
완전하게 우리들 돈을 떼어 먹었네요.
깨끗하게 포기하고 돌아섰습니다.
결국 그사람 오래 살지도 못하고 일찍 떠나갔습니다.
내돈을 가지고 하늘 나라로 말입니다.
그외 1970년대 말에 팽성읍 객사리에 사는 유모씨의 [건축업자] 일을 하였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약 5일정도 했던것 같습니다.
이양반도 처음부터 돈을 떼어 먹을 작정으로 시켰더라구요.
몇 개울후 그집을 찾아가니 아이들 서너명이 방안에서 울고 있더라구요.
옆지 아줌마의 말로는 며칠전에 어떤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 그집의 물건을 전부 가져갔다네요.
이런 한발 늦었습니다.
우리는 돈도 못받고 못볼 것을 보고 왔습니다.
1994년인가 북한 김일성 죽던날 무지하게 더웠습니다.
그 더위에 팽성읍 평궁리 현장에 죽을 고생을 했는데 이 업자 새끼도 처음부터 작정을 한넘이더라구요.
몇 찾아가다 포기했습니다.
그외 다수 여러번 헛일을 하였습니다.
당시의 금액이나 현재의 가치로 환산해도 적은 돈은 아닐겁니다.
그돈 못 받아도 굶어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지금의 가치로 계산해보면 소형 아파트 한채는 무난할듯합니다.
남의 돈을 떼어 먹고 마음 편하게 잘살고 있을까요?
그런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잘 살겁니다.
양심에 가책은 애당초 없었을것이구요.
돈을 더 벌기 위해 돈을 투자하고 피해를 보았다면 욕심을 부린 탓을하겠지만요.
남의 말에 속아 내돈을 주고 사기를 맞아 큰 피해를 보는경우도 있겠구요.
보증이나 담보를 내주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하지요.
모두가 피같은 귀중한 돈은 틀림이 없을겁니다.
일해주고 못받은 돈 [임금] 일지라도 모두 똑같은 심정일겁니다.
모두가 정말로 아까운 피 같은 내돈이지요.
우리는 자본주의에 살아가며 그것도 경제력이 모든것을 말해주는 그런 사회에 살고있으니까요?
본인은 돈을 남에게 빌려준적도 거의 없으며 남에게 빌린적도 거의 없다.
없으면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굶던가 참던가 말이다.
돈을 빌리러오면 거절하기 정말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어느날 부터 돈을 빌리러오면 내 사전에 빌려주는 일은 없고 그냥 돈을 줄테니 가져가라한다.
조금 아깝지만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할것 같아서이다.
안 갚아도 속태우거나 사람을 잃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러한데 사실 빌려줄 만큼의 돈이 없었다.
내 인생이 가난해서다.
정말 돈이 없어 아니 많이 벌지 못해서 겨우 끼니만 때우며 살아 가는데 결과는 비참했다.
나는 친가나 처가의 어른들께 효자는 100% 아니다.
효도란 돈이 있어야 하며 돈으로 하는 효도만이 유일하게 인정 받는다.
처가의 어른들이 어렵고 힘들게 생활하시는데 도움을 드리지 못해 항상 죄를 짓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아랫 사람은 월급이 많아서 아니 돈이 많아서 일찍 땅사고 자가용 사고 윗사람인 나보다 모든면에서 월등했다.
가진게 없으니 당연 기죽어지냈다.
어쩔수 없지 않은가 뱁새가 황새의 다리를 어찌 올려본단 말인가?
세월이 흘러 모두 돌아가시니 결국에는 안들어도 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형부는 돈을 안써 안써도 너무 안써 우리 신랑만 바보같이 돈을 썼단 말이야....
사실 인정한다 1000% 사실이다.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언젠가는 내가 돈을 벌면 이빚을 다 갚을것이다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돈이 쉽게 나에게 찾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짠돌이 노랭이로 차별을 받으며 아랫사람들 한테 손가락질 당하고 욕을 먹고 있다.
돈이 없어서 못한것이지 어디 감춰두었나?
미안하다 많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이제 내 나이 71살 이제는 그런일없을텐데 아쉽고 아쉽다.
여기에도 내 돈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인데 그러면 내 돈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평생 술 담배 안하고 살아도 남는게 없으니 아이러니라 할것이다.
하루 담배 한갑이면 50년을 평균으로 계산하면 천원정도 일것이다.
그러면 한달 3만원 1년이면 36만원 10년이면 360만원 50년이면 천팔백만원 정도 그런데 이런거 계산하는 사람 제정신인가?
그렇다면 평생을 피우고 마신 사람은 거지가 되어야하는데...
암튼 내돈은 어디로 갔는가?
누가 대답 좀 해줘봐요.
그렇다 처음 부터 나에게 아니 내 돈이 아니였던 것이다.
내것이 아닌데 어찌 내것이라 하겠는가?
이제는 여기서 이만큼 만족하며 살자.
발버둥 친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 돈은 처음 부터 없었다.
이제 비우고 살자.
이제는 여유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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