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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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묵언 인생 [158]

현덕1 2022. 4. 18. 20:20

최인태의 세상이야기 블로그입니다

찾아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식자우환 [識者 憂患]이라 했던가요?

예부터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했다지요.

아는 것은 많고 입이 가벼우니 항상 문제가 됩니다.

자칭 백과사전이며 지식이나 상식은 통달은 아니지만 누구에게 지는 것은 싫어하는 타입이지요.

결국에 엄청난 일이 생겼습니다.

 

1993년 말경에 경찰서 정보과에서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그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두 가지 피해갈 수없는 길목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하늘의 명이고요.

두 번째는 경찰 즉 법의 부름이지요.

오전 10시경에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담당 형사가 준비 마치고 기다리고 있네요.

당시 00 경찰서는 석축으로 지은 아주 오래된 구식 건물이었습니다.

당연 모든 사무실은 협소했으며 한 곳에 여러 팀들이 동시에 업무를 보고 있더라고요.

정보과 업무로 조서 작성 중인데 바로 옆 책상에서 보리타작을 준비하고 있네요. [형사과 업무]

제가 알고 있던 형사[태권도 유단자로 경찰 근무]가 의자에서 갑자기 위 옷을 벗으면서 말하는데 오싹하네요.

오늘 이 새끼한테 분풀이[스트레스 해소] 아니 한풀이 좀 한다네요.

물론 저는 아니고요.

 

어젯밤에 시내 모처에서 패싸움이 있었는데 재수 없게 잡혀온 폭력 전과자[00 경찰서 블랙리스트 1순위]로 온몸에 용문신이 그려져 있네요.

수갑을 풀어서 손을 뒤로 돌려서 다시 채우고 발목에는 족갑을 채우네요. [발목 수갑]

그리고 서너 명이 돌아가면서 주먹을 날리는데...

잠깐 담당 형사가 구경 좀 하자고 하네요.

그렇게 맞아도 코피 한 방울 안 나네요.

얼굴은 이미 빨갛게 변하고 가슴과 허벅지는 푸르스름해지네요.

이 친구 맷집이 좋은 것인지 악에 받힌 것인지 그렇게 얻어 맞고도 입가에 살짝 미소가 보이려 하네요.

 

지금은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지만요.

암튼 옆에서 보리타작에 매 타작이 이어지고 저는 다시 심각 모드로 들어갑니다.

저에 죄명은 국가원수 모독죄리네요.

청와대로 투서가 들어왔는데 제가 사람들 모아놓고 전 전 대통령을 비난하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합니다.

그래서 관할 경찰서 정보과에서 확인하는 것이랍니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는데.

12시가 되니 담당 형사가 점심을 먹고 하자네요.

제가 국밥 두 그릇 배달시켰습니다.

잠깐 휴식하고 이어집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지급되는 초기여서 모든 형사들이 손가락 한 개만 움직이는 일명 독수리 타법이라서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해가 짧은 계절이라 금방 어두워지더군요.

가로등 불빛이 춤을 추는데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정말로 숨이 막혀오고 하루가 1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조서 작성 마지막은 종이 한 장 한 장을 반으로 접어서 손도장 즉 지장을 빠짐없이 찍고 넘어갑니다.

작은 소설책 한 권이 만들어지더군요.

조서가 마무리되니 서랍을 열고 편지 봉투를 건네주네요.

노란 봉투인데 청와대 주소가 종로구 수송동이란 것을 처음 알았네요.

누군지 짐작이 가느냐 묻더군요.

한글 필체가 옛날 어른들 필체인 것은 확실한데 그렇다면 나이 든 사람일 것이지만...

그 사람을 떠올려도 방법은 없습니다.

물어본다고 답을 할 것도 아니고 잘못 협박이라도 하면 더 큰 불이익이 돌아올 것이고요.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대답을 듣고서 한숨을 쉬면서 하는 말이 이 사람이 두 번 세 번 투서를 넣으면 이곳에서는 당신을 구제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즉 안기부에서 처리할 것 같다고요.

조심 또 조심하라고 당부하네요.

 

집에 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고 투서가 다시 들어가면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데...

연산군의 신언패[愼言牌]가 생각나는 밤이 깊어갑니다.

연산군에 피의 복수가 절정에 이를 때 신하들이 하도 말이 많아지자 내린 형벌의 일종이지요.

궁궐의 모든 신하는 목걸이를 하나씩 두르게 됩니다.

그대 입을 다물라................................

 

구화지문[口禍之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폐구심 장설 [閉口深藏舌]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안신처 처우[安身處處宇]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이 글을 매직펜으로 크게 써서 벽에 걸어 두고 다짐해본다.

오늘 이 시간부로 입을 열지 않을 것이며 더구나 정부의 정책을 절대로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 이후 10여 일이 지나면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김영삼]가 들어서는 투표날이 되었다.

한시름 놓았지만 앞날을 어찌 알 수 있나?

다른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을 때만 하고 가급적이면 정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