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제초.
- 충북괴산벌초대행
- 괴산청천벌대행
- 괴산벌초대행.
- 벌초대행
- 괴산제초대행
- M
- L
- d
- 공주군 계룡면 경천리.경천중학교.경천저수지.
- 벌초
- 농장 공장제초작업
- 청천벌초대행.
- 괴산제초작업
- 괴산청천벌초대행 괴산벌초대행
- 괴산청천벌초대행.괴산제초대행
- ㅡ
- 괴산청천제초대행
- ㅣ
- 다음
- 괴산청천벌초대행
- ㄱ
- 청천벌초대행
-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경천리.성밑마을.
- 청천면지경리 지경리 아랫지경 깃골 주막거리
- T
- 괴산벌초대행
- 동
- `
- 야
- Today
- Total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그냥 하는 이야기 2. [132] 본문
최인태의 세상이야기 블로그입니다.
찾아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나~ 여보세요.
저쪽~ 셋 째 엄니 모시고가...
나~ 아니 무슨 일 있어요.
저쪽~ 내가 며칠 후 제주도 가는데...
나~ 네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쪽~...........................................................................................
나~ 제주도에는 무슨 일이세요.
저쪽~ 내 환갑이라서 애들이 제주도 구경시켜준다고 해서.
나~ 아니 그러면 엄니 모시고 함께 다녀오시면 되겠네요.
저쪽~............................................................
일단 전화 끊어지고...
한 시간 후 이제 내가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형수님 기왕 가시는 것 어머니 모시고 함께 다녀오시면 되잖아요.
돈이 없어서...
크앙~~~~~
얼마 데요, 얼마면 돼요, , 어머니 제주도 한 번도 안 가보셨는데 맏아들 내외로 그렇게 어렵나요?
내가 돈을 보내드릴게요 함께 다녀오세요.
8남매 키우시느라 비행기 한번 못 타보시고 제주도 한번 못 가보셨는데 어떻게 어머니를 안 모시고 갈려는 생각을 하세요.
.............
내가 50만 원 보낼 테니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광주 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제주도 며칠 구경하고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8남매에 저는 아들로는 3남이고요.
위에 누나 두 분계 셔서 순서로는 5번째가 되네요.
때는 아마도 2003년 아니면 2004년 가을 같네요.
울 엄마는 8남매 손가락이 모두 아프실 텐데.
맏이라고 처음으로 엄마 모신다고 가신지 몇 달이 안돼서 이야기입니다.
얼마 후 어머니께서 형님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낮잠 주무시다 그대로 떠나셨다네요.
연락받고 급하게 경기도에서 논산시내로 달려갔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이런저런 일을 보는데 휴대폰이 울립니다.
시째 여기는 논산 시내 모 병원인데 나를 데리러 와 지금...
저는 승용차가 있어서 그리고 제일로 만만해서...
상주 옷을 갈아입었는데...
병원 찾아가서 주차장에서 대기하니 축 처진 얼굴로 나옵니다.
아무 소리 안 하고 그대로 모시고 병원으로 왔습니다.
잠시 후 조카에게 물었습니다.
네 어머니 왜 병원에 가신 거냐?
할머니 돌아가신 것 보고 놀라서 링거 주사 맞으러 가셨나 봐요.
띠이잉~~~ 띵요~ 띵요~~~ 띵요~~~~
아니 시어머니 돌아가신 모습 보고 놀라서 영양제 맞으러 병원으로....
그것도 상주인 시동생한테 자신을 태우러 오라고 전화를...
이거이,.............
잠시 후 또 나를 찾네요.
큰 조카딸이 기차에서 내리니 역에 가서 모셔오라네요.
넵 알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상주입니다.
그리고 조카는 손아랫사람이고요.
병원 갔을 때도 택시 타고 오면 될 것을...
조카딸도 지가 택시 타고 오면 될 것을...
어머니 발인 전날 맏상제인 형에게 상의했습니다.
내일 운구할 사람 어떻게 하셨는지요?
형님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네 형수 교회 사람들이 해준다니 걱정 말아라하길래 그대로 믿었습니다
참고로 형수는 집사님이시며 얼마 전부터 신자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장례 때마다 작은 마찰이 일어났고요.
그래서 모든 일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키는 모든일 말대꾸 안 하고 그대로 했습니다.
아마도 소한[小寒] 날 정도였는데 그날도 엄청 추웠습니다.
저수지 둑방에 영구차가 도착했습니다.
어머니 관이 영구차에서 내려지고 이제 운구 차례입니다.
형수 교회 사람들이 한 명도 안보입니다.
조금 전에 분명히 모여서 식사하는 것을 보았는데.
식사 마치고 그대로 봉고차 타고 가버렸다네요.
이런 된장 할 일이...
산 위로 1km 이상 거리인데 이 추운 날에 난감하네요.
생각 같아서는 맏이한테 주먹이 날아가야 하는데...
돌아보니 제 지인들이 어제 장례식장을 다녀갔는데 오늘 다시 왔더군요.
지인한테 어렵게 부탁해서 8명을 모셨습니다.
운구 마치고 약간의 사례금을 주었습니다.
1968년 가을농사 마치고 큰형님께서 결혼식을 하였습니다.
3일 잔치였는데 심부름만 죽어라 다녔네요.
당시 저는 학교를 졸업했으며 막냇동생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겁니다.
가난한 농사꾼의 우리 집 8남매의 맏이에 시할머니까지 계셨으니 당연 힘들고 어려운 시집살이였을 겁니다.
그 고충과 고단함에 경의 표하며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첫딸 출산 후 나이 드신 할머니 다투고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마을 가장 안쪽 집이라서 편안한 마을길 놔두고 울타리를 넘고 산길을 걸어 고갯길을 걸어서 십여 리를 돌아서 하마루 버스 정류장에서 친정인 논산으로 갔습니다.
전기, 전화도 없던 시절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니 집안이 난리 났었지요.
더구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하늘로 솟은 것도 아닐 테고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닐진대 해가 넘어 어두운데 흔적도 없는 것입니다.
갓난아이와 함께 사라졌으니 상상을 해보세요.
더 이상 찾기를 포기하고 어머니께서 사돈댁으로 다음날 아침 첫차를 타고 찾아갔습니다.
왜냐면 아기 기저귀라든지 옷과 함께 없어졌기에 당연 친정집으로 도망간 것으로 추정을 했거든요.
그날 저녁 모친이 돌아오셨습니다.
부모님의 걱정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이유는 할머니께서 치매 초기 증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드라마 한 편이 펼쳐지는 느낌이었지요.
십여 일 후 형님이 처가 가서 데리고 왔는데 친정어머니까지 동행해서 오셨네요.
그 후.........................................................
1977년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11일 김포공항으로 배웅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군 복무 중이지만 비번날이라서 함께했습니다.
우리 집안의 기둥이신 큰 형님이 먼 타국 사우디 아리비아로 취업을 나갔습니다. [1년 계약이지만 2년 근무했음]
20일 후 편지 도착했네요.
국제우편이라서 편지봉투 테두리가 짧은 줄이 쳐진 아주 비싼 우표가 붙어있더군요.
내용은 잘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할머니와 부모님 걱정에 동생들까지 고맙게 걱정을 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문제는 답장을 보내는 일입니다.
받는 사람은 한글이 아닌 영문자로 적어야 했습니다.
거기에 우체국으로 직접 가서 무게를 달고 요금을 지불하는데 한나절 일당이 들어가네요.
요즘 말로 후들후들합니다.
그래도 꾸준하게 편지 오면 답장을 해드렸습니다.
제가 학력[學力]이 짧아서 알파벳을 써본 적이 별로 없어서 글자를 그림 비슷하게 그려 보냈습니다.
12월이 되니 1978년도 달력을 보내달라고 해서 열두 달이 종이 한 장에 들어있는 달력을 구한 후 국제 우편 봉투에 맞게 접어서 저울에 올렸더니 제 하루 일당이 날아가네요.
다음 해 여름에 제가 편지에 이런 내용을 보냈습니다.
송금하신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보시라고요.
제가 일하는 사장님이 부동산을 개발해서 분양하는데 당시에 25평형 슬라브 주택[1층으로 외부 적벽돌 치장] 약 1천만 원 정도 말씀하더라고요.
말복을 며칠 앞둔 무지하게 더운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전쟁터가 따로 없더군요.
남에 전셋집이지만 독채를 사용해서 남들은 잘 모릅니다.
할머니와 어머니 머리카락이 흩어지고 두 분의 옷매무새는 찢어지고 떨어져 있더군요.
이유를 여쭤보니 방금 전에 네 형수가 다녀 갔다 하네요.
젊은 여자가 두 분의 어른 머리채를 잡고 흔들고 밀치고 난리 부루스를...
6,25 전쟁을 능가하는 쇼를 연출하고 있는 대로 욕을 하고 방금 전에 나갔답니다.
군복을 입은 채 담벼락에 기대서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그 여자는 형의 편지를 받고 노발대발해서 찾아와 행패를 [패륜이지요] 부린 것이랍니다.
이유는 제가 보낸 편지를 읽은 그 양반이 자기 마누라한테 이렇게 적었답니다.
돈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동생이 그런 편지를 보내느냐고 했다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행패를 한답니까?
어머니한테 말하기를 시동생 놈이 먼 곳에서 고생하는 형한테 뭔 소리를 해서 자기 부부들 마음 상하게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찾아와서 보이는 대로 분풀이를 어른들께 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그동안[1년 반] 주고받은 편지를 모두 손가락이 피가 나도록 글자 하나 남김없이 찢고 또 찢었습니다.
이제 편지를 부치고 싶어도 주소를 몰라서 못합니다.
된장 할 놈의 영어 주소를 외우지도 못했고요.
편지도 오지 않더라고요.
2년 만에 귀국한 형이 하는 첫말이 동생 놈들 많아야 편지하는 놈 하나 없다고...
말대꾸 오늘날까지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할머니, 부모님, 형님 내외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귀국 선물이라며 손목시계를 하나 주네요.
일제 세이코 아마도 한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것도 고장 난 것으로요.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시계수리점으로 [아마도 삼화당으로 기억된네요] 갔습니다.
수리비가 삼천 원이 나오네요.
2일 치 일당입니다.
몇 년간 손목에 차고 사우디에서 온 것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아마도 1980년대 후반 어느 추석날로 기억납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입니다.
당시는 추석이 하루 당일만 휴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빠질 수가 없어서 처와 제수씨는 집에 남고 남동생들과 함께 큰집으로 갔습니다.
오후 2시 정도에 도착했는데...
논산의 어느 정육점에 들러서 고기도 사고 과일과 약주도 구입해서 가져갔습니다.
점심도 못 먹고 도착해서 준비해온 선물을 드렸더니 부엌에서 돼지고기 덩어리가 마당으로 날아가네요.
좋은 고기가 아니라 합니다.
제 나이 30 초반인데 남자들이 고기부위를 어떻게 알고 살까요?
결국은 여자들은 안 오고 자기 혼자서 명절날 힘들다고 우리에게 화풀이를 한 것입니다.
점심밥이나 주고 뭐라던지...
미안해서 오늘날까지도 함구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우리 집안 형님과 형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이렇게라도 남겨놓고 싶습니다.
인간 유전자는 아주 정확하네요.
유전자 염기서열은 천만분의 일에 오차도 없나 봅니다.
조카들과 질부는 유전자가 다른데 왜 그러지 착오를 일으켰나.. 이상하네.
질부가 2명인데 이렇게 흡사한 유전자를 데려오는 것도 아마 재주 중에 재주일 겁니다.
현시대는 1인 가구 시대이며 호적이나 종중 더구나 우리 집은 제사니 시제등도 일체 없답니다.
한편으로 시원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입니다.
'오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고향 경천의 맛 2(10). [134] (0) | 2021.12.07 |
---|---|
무제 2. [133] (0) | 2021.12.03 |
시골에서 隱遁 居士로 [131] (0) | 2021.11.20 |
그냥 하는이야기 [130] (0) | 2021.11.17 |
인간을 바보로 만드는 기계들. [129] (0) | 2021.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