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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서리[도둑질] [120] 본문

오늘의 이야기.

그 시절 서리[도둑질] [120]

현덕1 2021. 8. 3. 20:14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블로그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어학사전에는...

서리란~떼를 지어서 주인 몰래 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먹는 장난.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60년대가 끝나갈 즈음의 이야기일 겁니다.

당시는 시골이든 산골이든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별별일들이 많이 생겨났지요.

무지하게 더운 어느 여름날 밤의 이야기입니다.

초저녁에 마당에 보릿짚으로 엮은 멍석에서 저녁밥을 먹고 동네 마실을 나옵니다.

동구 밖의 큰 둥구나무 아래로 모입니다.

이때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지요.

조금 밤이 깊어가면 아이들과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집으로 가십니다.

말썽꾸러기 들과 동네 청년들만 남게 됩니다.

이제는 개울가로 자리를 옮겨갑니다.

낮에 뜨겁게 달궈진 모래와 냇가의 작은 돌들이 아직도 한낮의 열기를 간직하고 있거든요.

찬이슬 내리기 시작하면 모래와 자갈의 따스함이 더 정겹게 다가옵니다.

 

동네 형들의 호출에 달려갑니다.

누구누구와 누구는 지금부터 참외밭을 털어온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옷을 거의 벗고 바짓가랑이를 묶은 다음[자루 대용] 낮은 포복으로 수십 미터를 기어갑니다.

바로 옆의 콩밭 고랑 사이로 기어갑니다.

콩의 줄기가 가려주기에 들킬 염려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때 모기가 집중적으로 공격하지만 참아야 합니다.

 

아직 원두막의 주인이 졸린 눈을 부릅뜨고 망을 보고 있거든요.

어린 마음에 가슴이 쿵쾅 거려서 눈앞의 덩어리는 무조건 따서 넣은 후 다시 뒤로 돌아 포복으로 나옵니다.

몇 개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들키지 않고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거든요.

동네형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모입니다.

네다섯 명이 출동했으니 제법 많은 양을 훔쳐왔지만......

잘 익은 것은 몇 개 안됩니다.

그것도 우리는 먹지 못합니다. 

그냥 형들의 칭찬 한마디만 들으면 되거든요.

 

다음날은 수박밭으로 들어갑니다.

수박은 무게가 때문에 한 사람이 한 개 정도 따옵니다.

그런데 밭에서 손으로 때려서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아무거나 크기만 하면 가져왔는데 5개 모두가 아직 익지 않아서 그대로 버리게 됩니다.

보상은커녕 꿀밤 한 대를 상으로 받고 돌아섭니다.

 

여름날이 가고 추석이 지나면 밤이 더 길어집니다.

이제는 사과 과수원을 타깃이 됩니다.

사과 서리는 그래도 할만합니다.

포복이 필요 없고 어슴프레 붉은색이 보이거든요.

성공만 하면 버리는 일은 없거든요.

 

시골에 겨울밤은 길고 길기만 합니다.

동네 젊은이들은 지루한 겨울밤을 이렇게 보내기도 합니다.

초 저녁 무렵에 계획을 어느 정도 잡아놓습니다.

오늘 밤에 어느 동네 누구네 닭장이 조금 외지고 허술하니 두세 마리 정도 꺼내오자고요.

통금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에 출동합니다. [시골은 통금이 크게 의미 없음]

벌써 몇 차례의 실력이 있어서 잠깐 사이에 성공합니다. [작업내용은 안 비밀로]

그사이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물을 끓여 놓고 기다립니다.

야 성공했네 근데 누구네 닭이냐 하고 물으니 피식 웃으며 눈으로 대충 이야기합니다.

야 인마 그 집은 우리 고모네 집이잖어...

아니면 그 집은 우리 외숙모 친정집 인디...

아니면 우리 형수님 작은집 인디...

이미 닭은 옷을 벗고 솥 안에서 익어갑니다.

훔쳐먹는 맛이라서 별다른 양념은 없습니다.

푹 삶은 다음에 쟁반에 건져놓고 손으로 뜯어먹는데...

유일하게 왕소금이 조그만 그릇에 담겨있을 뿐...

이미 자정을 넘어 시간은 새벽닭이 첫울음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배가 불러 세상 귀찮을 즈음에 야 너희들 닭털을 잘 버렸냐?

닭의 부산물인 닭의 털과 내장을 잘못 처리하면 다음날에 바로 들통이 나거든요.

남들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에 배부른 닭 도둑들은 잠자리에 들어갑니다.

날이 밝으면서 동네가 소란해집니다.

닭 모이 주러 왔는데 닭이 없어진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지금 같으면 손에 들고 있는 전화기로 경찰서를 찾았겠지만요.

당시에는 어떤 놈들이 닭서리해갔구먼 에이....

잘들 처먹었을 것이여 에헴...

이것으로 끝입니다.

 

닭이 아니면 토끼가 다음 타깃이고요.

그 외 염소나 오리, 거위가 있지만 시끄러워서 금방 들켜버리거든요.

사실 우리 집도 몇 마리 털렸습니다.

 

1969년도 늦은 가을밤은 깊어가는데 우리 집 닭장의 수탉이 노래를 시작합니다.

너무 시끄럽고 아직 닭이 울어야 할 시간이 아닌데 잠도 안 오고 기분이 나빠서 닭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몽둥이 하나 들고 저 수탉을 때려잡으면 닭고기 먹는 생각으로...

그러나 큰 실수를 했습니다.

닭장 안의 닭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열 마리가 넘는데 모두 날뛰기 시작하네요.

그래도 우리 집인데 우리 닭인데 내가 도둑질하는 것도 아닌데 별일 있으려고...

사랑방 문이 열리더니 형님이 헛간 옆의 쇠스랑을 들고 뛰어오는데...

사람 잡을 것 같더라고요.

달도 없는 캄캄한 밤중인데 보이는 것이 없으니...

아이 쿠우!~~~

나는 이제 형님한테 쇠스랑에 맞아 죽겠구나 하는 찰나에 닭장 문이 열리면서 쇠스랑이 날아오네요.

소리 질렀습니다...

나유우~ 나 ~ 나라 구유~~~

목소리를 듣고 나가시더라고요.

그사이에 집안의 모든 식구들 이웃집 아저씨네 식구들까지 모두 구경 나왔네요.

손이 발이 될 때까지 빌었습니다. 

정말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런 경우는 닭의 목숨보다 사람 목숨이 더 값어치가 없는 경우일 겁니다.

 

군대 시절에 막 취침하려 누웠는데 호출이네요.

저는 단기 사병으로 군부대 내에서 경계병으로 근무 할 때였습니다.

상병 계급장이 보이더니 야 너 따라와 하면서 더불 백을 하나 던지네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뒤를 따릅니다.

유류창고 경계병이 보초를 서는 울타리를 헤치고 바로 옆의 배나무 과수원으로 들어갑니다.

당시에는 배를 찬서리 맞기 전에 수확해서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안 넣고 짚으로 덮어놓았더군요.

이 상병 자식 아주 능숙하게 더블백에 배를 담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보고 야 너도 빨리 담아 인마~

나이도 어린놈이 같이 도둑질하면서 지랄이여 c8~

가득 담아서 내무반까지 갖다 주니 달랑 배 한 개를 주면서 수고했으니 너도 한개 먹으라네요.

 

그 후로 남의 밭에 고구마를... 감자를...

보리가 익을 즈음에 보리 서리에 밀 서리까지...

뽕밭에서 오디를... 목화꽃 열매를 서리했습니다 [목화꽃 열매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이지요.]

 

1970년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겨울날 이야기입니다.

동네 아이들과 친구네 집 사랑방에서 지루하게 아니 정말로 심심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막 들어온 놈이 하는 소리가 야 며칠 전이 사온 집에서 장독대에 떡시루를 올려놓고 소원을 빌고 있다고 하네요.

모두 우르르 달려가 측백나무 울타리 사이 로보니 정말로 작은 떡시루에서 김이 모락 모락나네요.

구경만 하고 다시 사랑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두들 생각은 똑같았습니다.

떡 이야기를 시작하니 배도 출출해지고 해서 야 떡을 달라하면 분명 안 줄 것이니 가서 들고 오자 하고 제안합니다.

그러더니 두세 명이 안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곧바로 떡시루를 들고 들어왔니다.

동네 아이들 모두가 눈이 뒤집어졌습니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손으로 퍼먹었습니다.

아직 뜨거운데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난리 난리였지요.

순식간에 떡을 먹어 치웠습니다.

문제는 이 떡시루를 어찌할 것인가였습니다.

냇가에 들고 가서 깨버린 후 흔적을 없애버린다.

아니 떡은 우리가 먹었지만 그 집 그릇이니 대문 앞에 아니면 울타리 아래 갖다 놓자.

가위바위보를 해서 떡시루는 조용히 돌려주었습니다.

다음날 동네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사 온 집에서 이게 뭔일이라냐.

이 동네 인심이 이따위로 안 좋은가 보다...

그래도 지서 이야기는 안 나왔습니다.

결국 점심때도 안되어 범인들이 잡혀 들어왔습니다.

제일 어린놈이 지 할머니한테 불었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그 떡 도둑놈들 중에 제가 나이가 가장 많았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쌀 한말 주는 걸로 마무리된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동네에서 떡 도둑놈 두목으로 알려 지고요.

 

그 외 동네 방앗간을 돌아다니면서 쌀을 훔쳐 바지 주머니에 가득 넣고 아이들끼리 모여 앉아 생쌀을 씹어 먹기도 하고요.

경천 장날이면 건어물 파는 할아버지 난전에서 멸치를 한주먹 쥔 후 냅다 달려 도망가면 할아버지가 소리만 지르고 쫓아 오지 않는 것을 알고는...

죄송합니다.

지게로 엿 팔러 다니던 엿장수 할아버지가 저만치 보이면 냇가의 징검다리 돌을 일부러 삐딱하게 살짝 올려놓으면 분명 그곳에서 넘어집니다.

그러면 옆에서 놀고 있다가 달려가서 부축해드리면 고맙다고 팔다 남은 엿을 주시거든요.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50년 60년 전의 일이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분명한 도둑질이지만 모두가 알면서도 눈감아 주셨던 그 시절 아름다우면서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이 글을 읽는 6~70대들이라면 아하 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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