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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경천의 농사 이야기(8).[111] 본문

오늘의 이야기.

내 고향 경천의 농사 이야기(8).[111]

현덕1 2021. 6. 7. 21:25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블로그입니다.

찾아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1960년대 내 고향 경천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완전 초가지붕]

치국산 정상 성재에서 내려보면 바로 눈앞에 한 장의 그림처럼 보입니다. [당시에는 산에 나무가 없어서]

넓은 들녘과 산비탈에 적당한 밭들이 길게 누웠습니다.

계룡산에서 발원한 용두천과 노성천은 넉넉한 수량으로 풍년 농사를 이루게 해 주었습니다. [계룡저수지와 경천저수지]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두엄을 이고 지고 날라서 논밭에 펼쳐놓는다.

소외양간에서 돼지우리에서 닭장에서 뒷간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소중한 자원이 된다.

시골 뒷간은 부엌에서 나온 재를 떠과 함께 섞어놓는데 삼태기 담아서 밭에 뿌릴 때 손에 떵이 묻기도 한다.

새참으로 고구마 삶아 오는데 물이 있어야 손을 씻을 것인데 그냥 그 손으로 먹는 맛이란 음 이 맛이야...

특히 똥장군을 밭에 흩뿌려 놓는데 여기에는 똥통의 국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짚을 둥글게 원을 만들어 사용하고 그대로 버린다.

이때 향긋한 고향의 냄새가 번진다.

갱변에서 종다리 노래할 때는 못자리 마치고 밭에는 청보리가 누런색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보릿고개]

 

누렇게 익은 보리는 낫으로 베어서 단으로 묶어서 지게로 날아온다.

마당 한편에 잔뜩 쌓아놓은 후 도리깨로 내려치든가 탈곡기로 털기도 한다.

이때 초여름 더위에 땀이 흐르는데 보리 열매를 감싸는 터럭이 달라붙어 따갑다. [충청도는 꺼럭이라고도][ 또는 탑세기라고도 부릅니다.]

어느 해 여름날 우리 집 마당에 보리단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보리 탈곡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징이 사시는 노 씨 아저씨가 발동기를 리어카에 싣고 오셨다. [나무로 만든 리어카]

우리 집 마당은 소 달구지가 들어올 수 없어 리어카로 실어 왔는데 그 무게가 엄청나다.

어른 여럿이 힘을 모아 간신히 내려놓고 탈곡기에 맞춰 설치하고 발동기 시동을 걸어보는데.

이런 된장 할 고장이랍니다. 공주나 논산을 가서 부속을 사 와야 한다네요.

하루 이틀 못한다고 하시는데...

문제는 우리 집이 아니고 다음다음 집에서 난리가 납니다.

 

다음은 밀타작입니다.

밀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아프리카 어느 나라처럼 나무토막 위로 내리쳐서 털어냅니다.

우리 집은 절구통을 뉘어 놓은 후 밀당을 작은 끈으로 돌려감 은후 양손으로 힘차게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내려치면 알곡이 떨어집니다.

며칠 후 밀을 수확 해서 체면에 있는 물레방앗간으로 가서 밀가루를 만들어옵니다.

그다음날부터 수제비를 질리도록 먹습니다.

소방대 위의 방앗간에서 국수 기계로 국수를 만들어 햇볕에 말려 먹기 좋게 잘라줍니다.

다음날 부터 국수로 잔치를 합니다.

 

못자리에서 빡빡하게 모가 자라면 모내기를 시작합니다.

동네 어른들은 모두 새벽같이 나와서 모내기 준비를 합니다.

모를 심는 논은 이른 봄부터 쟁기로 갈아엎은 후 모내기 직전에 써레질을 해서 모가 자라기 좋게 평탄 작업을 해줍니다.

우리 아버지는 새벽부터 누렁 이소를 몰고 지게에는 쟁기 또는 써레를 지고 집을 나섭니다.

어둠이 밀려오는 저녁 무렵이 되어야 워낭 소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십니다.

저는 소의 입마개부터 벗기고 준비해놓은 여물을 먹입니다.

하루 일을 하느라 힘들어서 소도 많이 지쳐있네요.

우리 아버지는 우리 논 보다 남의 논을 갈아주느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여물을 지게에 지고 아버지의 목소 리들리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이랴  이랴~  이러루우 이러루우~ 어저저저 어저저저...

 

본격적인 모내기철입니다.

줄잡이 하시는 분의 목소리가 힘차게 들려옵니다.

막걸리 한잔에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리기도 하고요.

어느 날에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가뭄이 길어지다 비가 내리면 여기저기가 너무 바빠집니다.

4,5, 6학년은 모내기 지원으로 공부 대신 들판으로 달려가지요.

저도 몇 차례 모내기 지원을 다녀왔습니다.

아마도 경천 국민학교 출신이라면 [1970년대 이전] 한두 번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정신없이 모내기를 마치면 이제는 논에 잡초를 없애는 논매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한 번이 아니고 세 번 정도 하는 일이지요.

여기에는 남자들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초벌 매고  중벌 매기 풀이 더 많으면 세벌매기까지 합니다.

기계로 밀고 다니는 방법도 있지만 앞뒤로만 해서 결국에는 좌우에 있는 풀은 수작업으로 다시 해주기도 합니다.

논매기가 끝날 즈음에는 백중날이 찾아오면 호미 씻기로 마감합니다.

 

콩밭, 고구마밭에 바랭이[바라고] 풀이 한창 자라납니다.

제초제가 없던 시절에는 뙤약볕에서 손으로 호미로 뽑아내지요.

어머니 할머니들의 몫으로 남습니다.

남자들은 여름 푸정나무하러 산으로 올라가고요.

올가을 보리밭에 넣을 풀을 장만하느라 비지땀을 흘립니다.

면서기들이 줄자를 갖고 다니며 집집마다 두엄의 크기를 재러 다니기도 합니다.

퇴비생산 지력증진이라나 뭐라나요.

 

논에 농약 한두 번 치고 나면 어느새 황금 들판으로 변합니다.

농부들의 노고가 눈으로 보입니다.

치국산 성재에서 내려보는 경천 들녘[빈재미]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요.

드디어 벼베기가 시작됩니다.

물이 모두 빠진 논은 베어서 바로 널어 말립니다.

몇 번 뒤집어 말린 후 논두렁에 줄가리로 세워둡니다.

물이 많은 논은 베는 즉시 묶어서 젖은 채로 논두렁에 세워 말립니다.

이때는 수시로 앞 뒤를 뒤집어 주어야 골고루 마르거든요.

수렁논은 물을 뺄수가 없어 그냥 맨발로 들어갑니다.

이때는 발바닥이 내것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장화는 사치였거든요.

어느날은 솔직히 살얼음이 얼기도 하였구요[거짓말 보태서]

 

완전히 마르면 지게로 날아옵니다.

소달구지가 있어도 길이 없었기에...

지게는 바소쿠리를 떼어내고 대나무를 X 형태로 길게 매답니다.

그렇게 해야 더 많은 볏단을 쌓아 올릴 수가 있으니까요.

지금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있는데요?

빈 지게 지고 들로 나갈 때는 두런두런 이야기 하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그런데 볏단을 쌓고 지게 지고 일어나면 그냥 달리기 시작합니다.

중간에 한두 번 쉰 후 계속 달려서 마당에 도착합니다.

등정골 앞 들에서 용머리 지나서 성밑에 까지 어른들 쫓아다니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점심 저녁밥은 하얀 쌀밥을 아주 고봉으로 담아주네요.

당시 품삯은 100원 정도였는데 저는 1도 관심이 없었고요.

왜냐면요 저희 어머니가 알아서 받아가니까요.

 

다음에는 홀태를 사용하여 손으로 훑터내기도 하고요.

발로 밟는 탈곡기 아롱이다롱이로 어른들 서너 명이 돌아가면서 작업합니다.

마당에 노적가리가 탈곡 후에는 볏짚단으로 쌓아 놓습니다.

소여물로 사용하거나 겨우내 아궁이 땔감으로 사용하지요.

이때는 고구마도 수확하여 집집마다 겨울 양식으로 광에 쌓아둡니다.

 

서리 내리면 밭에서 고이 자란 김장 배추와 무를 수확하여 겨울 반찬 김장을 하게 됩니다.

우리 집은 100포기 즉 한 접은 기본으로 담아서 장독 어려 개를 땅을 파고 묻은 후 저장합니다.

젓갈도 안 들어갔는데 어머니 손맛인가요?

엄청 맛나게 먹었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마늘을 심고 보리를 파종합니다.

그리고 이엉을 엮어서 지붕에 얹으면 1년 농사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지요.

우리 집은 이제부터는 가마니 짜는 일을 시작합니다.

저는 밤낮으로 가는 새끼를 꼬아야 합니다.

가마니 한 장에 엄청 많이 들어가거든요.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도 쉴틈이 없었네요.

눈이 녹으면 나무하러 산으로 갑니다.

어른들은 멀리 계룡산으로 올라가지요.

새 봄을 기다리며 고단한 몸을 잠시 쉬어갑니다.

그렇게 경천의 1년이 지나갑니다.

 

그 시절 어른들은 모두 떠나가셨네요.

고향에서 반겨주는 것은 내 마음속의 그리움뿐이더군요.

그시절 동무들아..

그 시절의 산천의 모습이여.

오늘도 불러보는 그리운 고향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꿈속을 찾아갑니다.

그 시절의 모든 님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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