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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361] 본문
최인태의 세상이야기 T스토리입니다.
방문해주신 모든님들께 감사드립니다.
1975년 어느 가을날의 사고를 기억한다.
당시 조적공으로 평택 역 앞에 있는 삼양 주유소 건물 신축공사 현장이다.
조적 공정의 마무리 단계 작업으로 굴뚝의 마지막부분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는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주유소 건물의 규모가 단층 건물로 옥상 올라가는 계단실의 지붕을 덮고 그 벽면을 따라 굴뚝이 올라갔다.
계단실의 지붕은 스레트가 얹혀 있었다.
스레트가 약해서 3X6합판을 한장 깔고 그위에 벽돌과 고무 다라이 놓은후 몰탈을 개어서 작업이 시작된다.
오늘의 마지막 작업으로 이것만 마치면 집으로 갈수 있다.
그러니까 약 1시간 이내의 작업이 될것으로 예상했다.
1시간후면 해도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들것이기 때문이다.
50년전의 일이지만 기억은 또렷하다.
벽돌은 한장도 쌓지 않았다.
좁은 합판에서 내가 옆으로 걸음을 옮긴것까지는 생각이난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창밖에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아 있었다.
역 앞의 건물에서 추락사고를 당해서 약 500m 거리의 김외과 병원의 어느 병실에 누워있었다.
삼양 주유소 사장님 운전기사가 옆에서 보고 정신이 드냐고 묻는다.
그런데 나의 옷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아마 추락 할때 물통이 같이 떨어지면서 그 물을 뒤집어 쓴것이였다.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고 피 한방울 흐르지도 않았다.
천운이였다.
그대로 집으로 왔다.
병원에 도착은 했지만 응급처치라든가 주사 한방도 없었으며 의사나 간호원 얼굴도 못보고 집으로 왔다.
다음날에 김사장이 불러서 갔더니 동안의원에서 수액 한병 맞으란다.
생전 처음에 팔에 주사기 꽂고 유리병속의 하얀 수액[링거]을 맞는데 1시간도 더 걸렸다.
그걸로 끝이였다.
아무래도 어깨 부분하고 머리가 아파온다.
재랭이 사는 친구 맹*덕이가 우리집으로 찾아왔다.
병문안을와서 하는 소리가 내가 주유소 사장한테 가서 말하고 돈을 받아올테니 조금만 달란다.
그래 알았다 일단 받아 와봐...
어라 이친구 30분후 3,000원을 들고 왔다.
수고비로 1,000원을 준것으로 기억한다.
3m 이상의 높이에서 추락했지만 천만 다행으로 상처없이 지나갔다.
죽음의 문앞을 경험한 첫번째 사건이다.
약 2년후 신검을 했지만 면제가 아닌 방위병 소집 대상자로 분류되었다.
군사 훈련은 없었지만 예비군에 소속되어 훈련을 받았다.
1977년 3월 평택 기계공고 운동장에서 한창 훈련을 하는데 군처 호병계가 나타났다.
전부 한자리 모인후 호명이 시작된다.
전체 약 80%가 해당되었다.
중반이 되니 내 이름이 호명이 된다.
다음달 즉 4월 며칠날 안정리 소재 공군 5482부대로 입소하란다.
재수 없게 공군 방위란다 해서 여기 저기 알아보니 돈이 조금 필요하단다.
요즘 돈으로 몇백은 될텐데 그돈을 보안대장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5482부대 연병장에 수백명이 모였다.
약 10여명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이름을 부르던 조교가 집으로 가란다 그것도 그냥 가라는게 아니고 재수없는 새끼들은 당장 연병장을 나가란다.
만세다 만세 잠시 너무 행복했다.
며칠후 이번에는 육군 방위 소집 통지서가 도착했다.
보안대장에게 살려달라하니 자기는 육군을 모른단다.
해서 눈물을 삼키며 6월4일날 용인의 63훈련단에 입소했다.
와~ 정말 사람 죽이는 군대가 확실했다.
날마다 매타작이 대단했다.
PRI 교육이 한창이던 어느날 날씨가 후덥지근하며 목이 너무 말랐다.
갈증이 밀려와서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저 아래 수로에 가면 물을 마실수있을거라 생각하고 뛰었다.
소총이 걸리적 거려서 소나무 가지에 걸어 놓고 3분도 안되는 시간에 물을 실컷마시고 돌아오는데 어라 총이 안보인다.
이미 휴식은 끝나고 모두 정렬해 있었다.
소총을 잃어버렸으니 눈에 확들어 왔다.
교관이 묻는다.
총기 어디 있냐고 그래서 잃어버렸다고 솔직히 말했다.
손발이 덜덜 떨리는데 말도 안나온다.
나는 이제 죽었다.
저 교관,조교들한테 맞아 죽을 일만 남았다.
만약에 전시라면 나는 현장 총살감이라고 배웠다.
총기는 내몸의 분신이라 절대로 분실해서는 안된다.
교관이 똥방위에게 나를 지키라고 말하면 대원을 이동한다.
나는 철모 위에 대가리 박고 다리 한쪽을 들어 올리는 고강도 기합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 모든것을 포기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진다.
몸이 떨리는 현상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어차피 맞아 죽으나 감빵에 가서 죽으나 한번 죽지 두번 죽이지는 않을것이라 생각한다.
저녁 시간마다 전체 향도들의 매 타작을 보았으니 나는 매타작으로 운명을 달리해도 우리집에는 단순 사고사로 통보하면 그걸로 끝이다.
어린 교관에게 빌어도 소용없고 조교들에게 눈물을 보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 뻔하다.
차라리 군대와서 죽으니 이것 또한 영광이리라.
국립 묘지는 절대 못갈것이지만 피할수 없는 운명의 장난인것을...
어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방위에게 무전이 들어 오는데 야 그새끼 총주고 어디로 데리고 복귀하란다.
그걸로 끝이다.
누구의 빽이 작용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죽음의 문턱을 또 한번 간신히 넘어섰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50대 후반에 외국의 고산 트레킹을 다녀왔다.
6박 7일 일정같은데 가물 가물하네요.
여행사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등산로입니다.
물론 여행사와 현장 관계자들은 시물레이션같은 직접 자신들이 다녀온 코스라고합니다.
중국의 신강성 우루무치 공항에서 출발해서 시내 호텔에서 1박후 준비한 차량으로 이동합니다.
시냇물이 흐르는 넓은 지대를 만났는데 일행 모두 차에서 내려 맨발로 도강을 합니다.
그리고 한참을 오른후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라서 도보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야영지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곳은 헤이구[黑丘]라 부르는 물이 힘차게 흐르는 계곡이며 대형 수종의 버드나무가 여라 그루 버티고 있는 곳입니다.
텐트에서 1박후 다시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제 생각은 최대한 속도를 올려 걸어야하는데 일행 모두가 태평합니다.
물론 저도 초행길이니 뭐라 할말은 없지만 걱정이 깊어만 가더군요.
얼마후 석양이 짙어가는 시각에 운명의 장소에 도착을 합니다.
일반인들은 잘모르는 고산[설산]의 특징이 있습니다.
만년설이 쌓인 계곡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하고는 상관없이 물이 흐릅니다.
이물의 수위가 일정한게 아니라 그날의 기온이 조금 높으면 물이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오전에는 적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량은 엄청나게 불어난답니다.
답사팀들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통과해서 잘몰랐다고 합니다.
아마도 물이 사람의 무릎 아래였을겁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허벅지를 넘나드는 정도 수량이 기세 좋게 흐르고 있네요.
물의 온도는 0도에 가까워서 사람이 들어가면 곧바로 냉동이 되는느낌입니다.
하천의 바닥은 돌이나 자갈 흙이 아닌 빙하 즉 얼음입니다.
엄청 미끄럽습니다.
약 20여명의 일행중에 선발대급으로 약 5명이 건너기 시작합니다.
등산화는 벗어서 목에 걸었습니다.
여권이나 현금이 들어있는 가방도 목에 걸고 등에 배낭 역시 단단히 고정을 합니다.
그런데 물속에서 넘어지면 그대로 아웃입니다[죽음]
직선으로는 전진이 안되어서 사선으로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길게 건너야합니다.
첫번째 시도했는데 순간적으로 두발이 동태가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깊어져서 되돌아 나옵니다.
다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건너지 못하면 밤새 이곳에서 얼어죽어야한다네요.
두번 세번 네번 도전을 합니다.
정말 죽음을 무릅쓰고 눈물을 흘리면서 도강에 성공합니다.
등산 양말을 착용하고 등산화를 신고 살았다를 외치면서 베이스 캠프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미 산속에는 어둠이 짙게 내리기 시작합니다.
한참후 베이스 캠프에 도착해서 구조대를 보냅니다.
모두 무사히 도착해야하는데 말입니다.
몇 시간후 저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둠속에 일행이 돌아온 모습을 보면서 텐트안에서 잠을 청해봅니다.
오늘 저곳에서 넘어졌다면 시신도 찾지 못할거고 뉴스에 나오면 악플에 두번 죽을 것이니 기가 막히네요.
다음날에 여행사 가이드에게 귀국해서 고소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두 무사하게 1박후 하산을 하였습니다.
설산이나 고산에서의 죽음은 원칙적으로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의 90% 이상은 현재도 눈속이나 바위틈에서 잠들어있다는것입니다.
이유는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산에 오르는 우리도 그런점을 알고 가지만요.
다시 세월은 흘러 내 나이 72세 후반에 위기가 찾아왔다.
11월 중순에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누구나 공포에 질리는 그런 위험한 질병 말이다.
사나이 인생에 3번의 부자가 될 기회기 찾아 온다고 했다.
부자는 모르고 죽음을 면전에 두는 그런일이 3번이나 찾아왔다.
나쁜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 맞는다고 했다.
나 개인의 생각과 판단이 결국은 병원문을 두드렸으니 불행의 서곡이 아니련가?
정확한 진단을 받으니 차라리 마음은 편해지는듯하다.
사람 목숨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한달 반후 수술대에 누웠다.
10시간의 정지된 시간을 보낸후 귓가에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어디가 아픈지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알듯 모를듯 누워서 눈만 껌뻑거린다.
충북대 병원 25일 다시 요양병원 한달 긴 시간도 찗은 시간도 아니였다.
느낌 그대로 죽음의 시간이 아니던가?
초기에는 2기이며 수술 시간은 약 3시간 소요라했는데 10시간이 넘었다.
시작해보니 예상밖으로 4기에 가까웠으며 더 많이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죽음의 문턱을 가까스로 넘어선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의 지난 시절을 뒤돌아본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모자란가?
후회는 없는가?
아쉬움도 없는가?
미련은 남지 않는가?
암진단을 받으면 누구든 충격을 받으며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수없다.
의학이 발달하고 의사들의 수준이 향상되어도 암환자는 걱정을 할수밖에 없다.
70대 초반에 찾아온 불행이지만 어쩌겠는가?
스스로 싸워서 이겨내야지...
누굴 원망할수도 없으며...
자신을 탓한들 무엇이 달라질것인가?
그냥 내 인생이 이렇고 내 운명의 나아갈길인데 말이다.
짧지 않은 인생에서 죽음의 문턱을 3번이나 경험했다.
다행이 살아 남았으니 이것 또한 대단한 행운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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