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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추억의 가락국수 [359] 본문
최인태의 세상이야기 T 스토리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우리의 전통이랄까 아님 한때는 대유행이였던 일반 서민 문화의 일부였다.
물론 분단 전에는 기찻길의 길이가 수백km였을때도 있었다.
전란후 남한의 기찻길이 짧아도 속도가 느렸으니 당연 배고픔을 해결해야했다.
기차표를 사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기차의 종류와 가고자 하는곳의 길이에 따라 표값은 달라진다.
초기에는 기차 요금도 아까워서 국수 한 그릇도 사치였다.
멀리 마산에서 출발해서 대전역까지는 이미 4시간 이상 소요되었으니 배가 고플때도 되었다.
생애 첫 국수를 먹으려고 그 짧은 시간에 매점 앞에 서서 국수 한 그릇주세요.
몇번을 말해도 내 앞에는 국수 그릇이 오지 않았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해서 포기하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
왜 나에게는 국수를 안팔지 한참후에 그 이유를 알아 챘다.
매점 앞에 서면 일단 돈을 먼저 주어야 국수 그릇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로만 달라고 해도 먹고 기차 타고 도망가면 그값을 못받기 때문이다.
다음 기회에는 꼭 먹고 말리다.
특히 그 짧은 시간에 여유있게 먹는 방법도 터득했다.
대전역의 앞선 역인 옥천 역에서 부터 기차의 중간 칸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대전 역에서 내리는 사람보다 앞서 내려야 한다.
대전역은 상하행선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내린다.
기차가 역 플랫폼에 도착하는 즉시 내려서 주머니에서 돈을 먼저 꺼내고 달린다.
돈을 주면서 한그릇이요 하면 1초안에 국수 그릇에 내손에 들어온다.
여유있게 맛있게 냠냠 짭짭 마지막에 들이키는 국물맛은 평생 못잊을 맛이다.
내가 먹고 돌아서는데 늦게 도착해서 돈을 주고 막 그릇을 받았는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몇번 먹어본 사람은 국물이라도 마시고 가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대로 놓고 기차에 오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때는 1회용 그릇에 담아 팔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기차 안의 쓰레기가 문제를 일으켰으리라 짐작해본다.
그시절의 남자라면 가락국수 한그릇에 삶의 애환을 인생에 쓴맛을 담아 먹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그런 추억이 없다면 당신은 온실속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분명하다.
기억이 맞다면 한그릇에 500원이 떠오른다.
물론 세월따라 가격의 변동은 어쩔수 없었을것이다.
가락국수를 파는 주인인가 아님 판매 홍보요원인가?
이분은 기차가 정차하면 맨 앞칸에 올라서 통로를 따라 걸으면서 이런 안내를 하면서 바쁘게 걸어간다.
본 열차는 급수 관계로 대전역에서 5분간[아님 10분 또는 20분일 경우도 있음] 정차하므로 홈에 나가시면 따끈한 가락국수 500원에 모십니다.
그런데 이말을 듣고 고민한다면 못먹을 확률이 100%다.
왜냐하면 다시 내려서 저앞에 가물가물한 매점까지 뛰어야 가능한데 말이다.
암튼 가락 국수 한그릇이지만 바둑의 수만큼 철저한 계산이 따라야만 가능하다고 말할수 있다.
가락국수는 성인되어서 기차역에서 맛을 보았지만 장마당이나 포장 마차에서 먹은 기억은 거의 없다.
하필 장터 동네에서 살아서 그렇다고 말할수있다.
장터에서 멀리 있는 동네 사람들은 장에 오면 무조건 한끼 식사를 해결해야한다.
오가는 거리가 멀어 짧은 시간에는 무리이기 때문이가.
그러나 돈이 없어도 이웃집 아저씨나 아주머니를 만나도 너 밥안먹었지 이리와라 같이 먹자하고 한그릇 사주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마당에서 동네 사람 100을 만나도 아무도 밥먹었냐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이유는 집이 가까우니 당연 집에 가서 먹을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에는 누구에게 얻어 먹은 기억이 없고 술을 안마시니 술 친구도 없으니 당연 길거리 국수도 먹은 기억이 1도 없다.
20살 시절에 서울살이 힘들게 할때는 라면으로 해결하였다.
삼양라면[빨간 봉지] 1개 넉넉한날은 2개 정도 물론 반찬은 아예없었다.
정말로 약 한달간을 쌀 한톨 못먹고 반찬도 없이 맨라면으로만 연명을 하였다.
마지막날에 주인집 아저씨 생일이라고 안방에 들어오라고해서 갔더니 진수성찬에 쌀밥이 나왔다.
아하 이래서 사람은 돈을 많이 벌고 성공을 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후 라면도 먹고 신촌시장안에서 돼지국밥[80원] 1그릇을 가끔 사먹었다.
그때 사진이 없어 그렇지 아마도 체중이 70kg도 안나갔을것이다.
무엇을 제대로 먹어야 체중이 늘어나지 죽지 않을 만큼 먹으니 당연했으리라.
가락국수의 기억은 더 이상 없어적을 수도 없겠다.
하지만 동네 잔치에서는 국수가 대세였다.
밀가루 국수를 큰 솥에서 삶아서 싸리 나무 채반에 올려 놓은후 사람이 오면 뜨거운 육수 국물을 넣거나 토렴으로 손님상에 내어주었다.
국수위에는 고명이 올려져 있는데 아이들은 생략하거나 그냥 흉내만 내는 형식이였다.
잔치는 결혼식이고 환갑잔치이고 거의 비슷했다.
어른들은 대우해주지만 아이들은 그냥 거지 비슷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모든게 부족한 시절이라서 그랬다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서운하다.
이제 국수는 별식이 되어 맛있게 먹는다지만 그시절을 떠올리면 서러움에 눈물이 솟기도 한다.
7~80년대 건설 현장의 함바 식당에서는 국수 한그릇에 목을 매는 업주들이 설치고 있었다.
그들은 함바 식당 하나 들어올려고 거금을 현장 소장이나 건설회사에 주어야한다.
그리고는 그들의 후광을 등에 업고 온갖 음식 장난을 하며 인부들의 등골을 빼어먹고 있었다.
그런데 한결같이 인부들은 그들의 장난에 발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오야지가 보증섰다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외상 거래를 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사채보다 무서운 금리였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 한근을 외상 장부에 이름을 올리고 가지고 간다.
일반 정육점의 3배내지 4배 이상의 가격이다.
동네 정육점에서는 외상을 주지 않으니 별다른 도리가 없다지만 조금 참았다가 월급날 현금을 받으면 사가면 될것을 말이다.
더구나 자신이 술 생각이 난다고 외상이니 이름 적어 놓고 무한정 퍼마시고 있었다.
그러니 평생 노가다 생활 못벗어난다...
이런 함바 식당에서는 점심 식사후에 국수를 한번에 엄청나게 삶아 놓는다.
아주 물에 불어 터진채로 말이다.
쳐먹거나 말거나 그래도 말한마디 못한다.
아주 먹다가 토가 나오려한다.
우동 가닥 만큼이나 굵어진 국수 가락을 말이다.
지금도 불어 터진 국수를 보기만 해도 우엑소리가 절로 나오고있다.
정말로 인간이 먹으라는 것인지 돼지가 먹으라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사실 지금도 삶은 국수를 얹어 놓은 채반을 보면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다.
국수를 일부러 찾아 먹을 일은 평생에 없을것 같다.
가락국수는 사실상 맛의 기준으로 본다면 우동에 가깝다고 할것이다.
중국집에서 만든 그 우동이든 전문 식당에서 유명 셰프가 만들었든 우동말이다.
일본에서 유명한 라멘도 먹어보았지만 우동의 범주로 생각해도 무방할것 같다.
국물이 진한 국수 종류라면 모두가 거기서 거기일것 같다.
기차역에서 먹었든 포장마차에서 먹었든 시장 통에서 먹었든 모두가 배고핀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도 시장이 반찬은 맞는 말이다.
배가 부르면 즉 포만감이 있으면 맛있는 음식도 별로일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배가 불러서 그런지 값이 싼 음식은 맛이 무조건 없다고 봐야한다.
가락국스 역시 예외는 절대 아닐것이다.
이제 영원한 추억속의 음식이 되어 버린 기차역의 우동 아니 가락국수의 맛은 절대 살아나지 않을것이다.
이제 잊었버리던가?
아님 멀리 보내줘야할때가 된것 같다.
이제 마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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