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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투 [325]

현덕1 2025. 2. 8. 19:38

최인태의 세상이야기 T 스토리입니다.

방문해주신 모든님들 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어 사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직책[職責]이나 직위[職位]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일반적인 감투란 일종의 벼슬인데 이게 참으로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벼슬에도 급수가 있다.

말단 공무원부터 최고위직인 대통령까지를 벼슬에 우선 순위를 매겨본다.

그외에 일단 사조직이나 일반 회사에도 계급이 존재하며 감투라고 부를만한 직책들이 있다.

읍면동 사무소까지 말단 공무원이 그 아래로는 리통장이 있다.

이장이나 통장도 엄연한 벼슬이며 감투이다.

그 아래 계급에는 반장이라는 직책이 존재한다.

그외에 부녀회장,노인회장,새마을 지도자 여기 까지는 애교인데 그 아래에도 총무라는 직책이 있다.

반장 아래 총무직책까지에 못들어 간다면 당신은 대한 민국 최하위의 일반 국민이다.

의소대,자율방범대등 계급 직책이라할수 있다.

여기서 대장급들은 지역 사회의 유지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기도 한다.

 

선출직이라는 국개의원이나 시군구 의원이있으며 관공서 주변에 기생하는 위원회 역시 무시 못한다.

이런식으로 나열하면 우리는 감투가 판을 치는 벼슬 아치들만 남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벼슬과 감투는 다르지만 암튼 나쁜 것은 아니고 좋은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에는 전교 회장과 각 반별로 반장이 있었다.

반장 아래에는 분단장이 있었다.

당시에는 학생수가 많아서 5분단에서 6분단 까지 있었다.

그러니까 반장 아래에는 분단장 즉 부하가 6명까지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덩치가 크고 외성적 친구들은 주번이라는 직책을 맡는다.

왼팔에 주번이라는 완장을 차고 다니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들렀다.

나는 거기에 거의 들어가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니 평생 벼슬이나 감투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아차차...

 

산악회를 창립할때 본인은 며칠을 고민하고 망설였다.

내성적 성격에 배움이 짧은것이 너무 흠이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하나의 틀속에 갇히는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 몇 지인들의 권고에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2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어 신임 회장을 선출한단다.

아무런 생각없이 참석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리고 본인 의사는 크게 반영되지 못하고 회장직을 수락했다.

2년간의 감투를 아니 벼슬을 받고 수행했다.

그시간이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의 시간이였으며 행복한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다시 시간이 흘러 귀촌하고 2년뒤 노인회 총무직을 맡게 되었다.

불명예로 물러났지만 노인회를 운영하는 벼슬을 받고 수행했다.

다시 몇년후 이번에는 마을 대동계 총무직을 맡아 보게 되었다.

2년간의 시간은 행복했다.

당시 대동계장님의 도움에 힘입어 맡겨진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는데...

대동계장의 임기는 정해진것이 없으며 본인의 의사 표현까지 얼마든지 역임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불상사로 인하여 2년만에 서로가 감투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이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 

 

말타면 종부리고 싶은 인간의 심리 벼슬자리 하나 잡으면 아주 사람을 잡는다.

이장부터 군수까지는 비교적 가깝게 만나거나 자주 볼수가 있다.

이장도 내 손으로 직접 투표해서 선출하였다.

면장은 임명직이라서 투표를 하지 않는다.

군수와 도지사는 선출직이라서 투표로  결정된다.

그 위로는 국개의원과 대통령이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별볼일이 없는 초개[草芥] 같은 은둔 노인의 힘이 이런 때 발휘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선출직으로 당선되면 이런 인간들은 카멜레온 보다 더 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당선되기 전에는 간쓸개 모두 빼줄것 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온갖 지랄은 다해놓고 막상 당선되면 무슨 소리냐고 하며서 반문한다.

예전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는 모 후보를 위해 도장을 몇번 찍어 주었다.

직접 선거를 도운 경험은 없다.

이번 군수 선거에는 간접적인 응원만 해주었다.

그런데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실망이지만 아직은 더 지켜 보련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는것도 아니고 사업상 무슨 도움이라도 바라는 것은 1도 없는 정말로 순수 그자체의 마음이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결국에는 감투[벼슬]가 버려 놓았다.

당선되니까 즉 물에서 나왔으니 당연하다 하겠지만 말이다.

잘생긴 내가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우리 가문[家門]에 벼슬은 아직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문이라면 증조부[曾祖父] 부터 시작해보자.

증조부[29세] 께서는 남매만 낳으셨다.

그러니까 조부님과 고모할머니 두분만 계셨다.

조부님께서는 5남매를 두셨으며 아들 넷에 따님 한분이 계셨다.

큰아들이신 선친께서는 8남매,두째 숙부님은 7남매,셋째 숙부님은 5남매 그리고 막내숙부는 남매를 두셨다.

하지만 우리 사촌 형제들은 아쉽게도 아무도 벼슬 길에 나가지 못했다.

큰 형님의 장자인 조카는 공무원으로 시청에 근무한다.

막냇 동생의 아들은 국가 기관은 아니지만 국방을 위한 방산 업체의 중요 연구원으로 근무중이다.

그외의 조카들 역시 일반 회사원이거나 작은 사업체를 운영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 역시 이장직을 한번도 역임하지 못했다.

어차피 벼슬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능력도 되지 못한다.

 

조선시대의 훌륭한 선비들의 면면을 보면 재주가 특출하면서도 벼슬길에 전혀 뜻을 두지 않으신 분들이 많이 계신다.

이분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벼슬을 마다 하셨을까?

벼슬의 마지막을 너무도 잘알고 계셨기 때문이였다.

벼슬은 처음부터 중간 까지는 그런대로 괜찮다고 할수있지만 그 끝에는 항상 명예롭지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것이다.

벼슬도 벼슬 나름일테고 감투도 감투 나름이라하겠지만 말이다.

벼슬을 따라 다니는 물건이 꼭 하나있다.

권력이다.

민중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민생을 짓 밟는 그런 권력말이다.

벼슬의 맛에, 감투의 맛에,  권력의 맛까지 보았다면 당신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벼슬만 알고 권력을 모른다면 존경 받는 인물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당신은 평생 시궁창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한 민국의 대표 시궁창은 여의도 모래성에 존재한다.

시궁창은 국어사전에~ 더러운 물이 고여 빠지지 않고 썩어 있는 곳의 바닥이라고...

 

임금의 머리에 쓰는 모자중에 익선관[翼善冠]이있다.

익선관의 존재를 아는 여의도 모래성의 국개의원 300명중에  몇명이나 있을까 심히 궁금해진다.

만약에 기자가 묻는다면 300명 전부가 안다고 대답할것이다.

하지만 그 뜻이나 유래를 정확히 아는지 마약에 안다면 왜 실천을 못하는지 궁금하다.

익선관은 매미의 날개를 상징한다.

입은 선비의 갓끈 처럼 길어서 학문이 길고

매일 이슬 처럼 맑은 물을  먹어서 청결하여

농부들이 애써 지은 곡식을 축내지 않으며

평생 집 한칸 없어서 검소하고 때가 되면 물러날줄을 안다.

매미 처럼 오덕을 갖춘 군주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란다.

 

전국의 수백만 공무원들도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일것이다.

그저 책상에 버티면서 25일 날만 기다리다 퇴임하며 평생 꽁돈 즉 연금 타 먹을 궁리만 할텐데 내가 너무 바라는게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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