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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284]

현덕1 2024. 6. 6. 19:53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T스토리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식물중에 덩굴성을 빼고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만 자라는 나무들도 서로간 거리가 필요하다.

솔방울이 운좋게 땅에 떨어진후 흙속에 묻혔다.

솔방울 한개속에는 수십개의 씨앗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씨앗들이 한개만 발아가 되어야 살아 남는데 이들은 모두가 동시에 발아하게 된다.

사람의 머리 카락 처럼 너무 빼곡하게 자라면서 결국은 모두 고사하고 만다.

서로 살아 가는 생존의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나무와 인간은 생존의 이격거리가 필요하다.

서로가 공존하며 문제 없이 생존하려면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며 이행 되어야만 살아 남게 된다.

하지만 덩굴 식물들은 다르다.

이들에게도 당연 이격거리가 필요하지만 이들 식물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 자란다.

그래도 이런 식물들은 문제 없이 살아 가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같은 동물이라도 다르며 특히 식물과는 완전히 다르게 살아 간다.

사람들이 살아가려면 이격거리가 필요한데 다음과 같이 정의 할수가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약 1m이상의 거리가 필요하다.

친구나 잘알고 지내는 지인이라면 약 60cm 이상의 거리가 있을것이고.

연인사이라면 50cm의 거리가 자리한다.

가족간의 거리는 약 30cm 거리가 적당하다

부부 사이는 0cm이며 

원수나 빚쟁이는 멀리 있을수록 좋다고 할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출근 버스나 명절에 이용하는 대중 교통은 항상 만원[滿員]으로 콩나물시루 처럼 사람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게 된다.

여기서는 인간의 이격거리는 과분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는 모르는 사람들과 몸과 몸을 기대고 부대끼며 피부가 스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얼굴 끼리도 부딪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번 경험해보면 아주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참아야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격거리는 여기서는 사치에 불과 할뿐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를 가끔 경험한다.

대부분이 앞 사람과 1m 이상 떨어지려 한다.

자리가 협소하고 사람들이 너무 많다면 조금 더 가까워 질수도 있다.

지난 몇년간에 코로나 기간에는 안전 거리가 법으로 시행된적도 있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전국민이 모두 동참해서 훌륭하게 이겨낼수가 있었다.

 

전세계인이 좋아하는 곡물중에 옥수수가 있다.

태초에는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왔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인류의 기아를 해결하는데 결정인 역할을 한것은 부인할수가 없다.

중남미부터 아메리카 대륙 전체 아프리카나 유럽 일부 중국이나 북한까지도 옥수수가 주된 곡식이다.

오늘날의 옥수수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재배되는 옥수수는 종류별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절반은 가축의 사료가 되지만 영화인이나 젊은 층이 선호하는 팝콘이 있다.

팝콘용 옥수수는 따로 재배하는데 품종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식용으로는 삶거나 구워먹는 형태가 있고 가루로 가공되어 다른 음식의 재료가 되기도 하며 인류를 먹여 살리고 있다.

하지만 옥수수는  인간의 손을 떠나면 생존이 불가하다.

다른 식물들 처럼 스스로 번식을 할수가 없다.

일부의 식물들은 열매가 익으면 순식간에 폭발하는 방식으로 꼭지가 터지면서 씨앗이 퍼져 나가며 번식을 이룬다.

일부 다른 열매들도 하나씩 분리되어 세상을 떠돌다가 발아하는데 옥수수는 그럴 능력이 1도 없다.

만약에 옥수수의 열매가 줄기 그대로 매달려 있다가 땅 위에 떨지면 수십알 아니 수백알이 동시에 발아되는데 결국에는 이들은 살아 남지 못하게 되어 고사한다.

설령 한두개 살아 남아도 열매를 맺기에는 역부족으로 자라게 된다.

즉 생존에 필요한 이격거리를 만들지 못해 죽음으로 달려가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나 식물이나 살아가는데는 거리가 필요하다.

 

젊은 남녀가 처음에 알게 되었을때는 완전 남남으로 사실 거리는 1m 이상이였을것이다.

자리에 앉을때도 마주 보며 최소한 탁자 사이의 거리는 유지했을것이며 차츰 시간이 흘러 가까워지게 되면 거리는 줄어 드는데 두사람의 교제 깊이 따라 그 줄어드는 시간의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한두달에 사이에 절반인 50cm가 될수있으며 더욱 발전해서 첫 키스에 성공했다면 인간의 거리는 0cm 도달했다고 볼수가 있다.

연인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중간에 이별을 했다면 이들의 거리는 영원불멸의 거리로 멀어져 갔을것이다.

거리의 여인과 0cm 는 영혼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제외한다.

순수 사랑과 영혼만의 이글의 주제가 될수있기 때문이다.

 

처갓집과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고 했다.

왜 이런말이 나왔을까?

처갓집 지금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사실 얼마전까지도 맞는 말이였다.

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한다고 했던가?

우리는 유교 사상에서 처가보다 본가 위주의 대물림으로 살아와서 그렇기도 하고 당시에는 처가에서 재산 상속이 전무하기도 해서 그랬을것이다.

출가외인에게는 재산 상속이라는 말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외동딸만 있는 집들이 많이 있으며 아들과 딸 구별없이 동등하게 상속이 이루어진다.

그런 이유로 떡고물 하나 없는 처갓집이 가까워서 좋을리가 없었을것이다.

당시의 화장실도 푸세식이라서 냄새나고 파리 들끓고 좋은것이 별로였으리라.

하지만 반대로 친정집은 국그릇이 식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좋다고도 했다.

여자의 입장에서 친정 부모는 항상 그리워했으니 음식 갖다 드리는 일이 효도였기 때문일것이다.

 

60cm 거리의 친구들도 없다.

실패한 인생이 아니런가 애통한 마음이 스며들기도 한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고위 관리도 아니며 재벌도 아니라 친구가 가장 많은 이라고 했던가?

본인은 친구가 몇 없으니 할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홀로 사는 인생이라지만 사람은 홀로 살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독거시대 1인시대라고 언론에서 야단 법석을 떨고 있다.

이런 세상은 인간과의 거리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며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본다.

죽음 조차도 홀로 맞이하는 그런 인생들말이다.

이들에게 인간의 거리란 사치일뿐이다.

 

본인이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는 거리 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다.

다른 분들과는 회관이나 길에서 만나면 인사는 물론이고 안부도 묻고 심지어는 음료수나 커피 아니면 식사 한끼도 거리낌이 없다.

그런데 이 두사람 부부인데 영원히 먼거리 아니 절대 다가갈수 없는 그런 관계가 서글프다.

그 사람들은 본인 보다 13살이나 더 많은 동네 어른이다.

사람인데 산속에 자라는 나무보다 더 못한 관계가 부끄럽고 창피하다.

그외 분들과는 1m의 거리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있다.

 

정말 어려운 사람과 사람의 거리 문제 이제 잊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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