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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얼음 과자 [280]

현덕1 2024. 5. 18. 20:44

최인태의 세상이야기 T 스토리입니다.

방분해주신 모든님 들께 감사드립니다.

 

얼음 과자란 어린 시절에는 장독 위의 하얀눈과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으로 알았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어린 시절에는 전후 시기라서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이였다.

과자라는것 존재 자체도 몰랐다는 표현이 나을것 같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엿을 만드는 공방 즉 엿집[고물상] 이 있어 과자 대신 엿을 먹을수 있었다.

엿집이 있다고 그냥 주는 일은 없었다.

눈으로 자주 보았으며 장날이면 운좋게 얻어 먹기도 하였다.

아 그리고 다른 한가지가 더 있었으니 요즘말는 뻥튀기 이지만 당시에는 튀밥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이 옥수수이며 부잣집에서 가래떡을 말려 떡을 튀기기도 하였다.

물론 장터에 가면 가겟집에서 파는 과자 종류도 많았으나 돈이 없어 사먹지는 못했다.

과자중에 기억나는것은 유과와 비과 그리고 박하사탕과 눈깔 사탕,십리 사탕, 건빵등이 있었다.

부잣집 제수 용품으로 사용되는 오방사탕 그리고 역시 제수용품인 산자라는 쌀을 튀긴후 엿에 묻힌 과자이다.

다른것은 구경만했지만 엿은 엿치기 하는 아저씨 곁에서 가끔 얻어 먹은 기억이 있다.

 

1971년의 어느 여름날에 숙부님의 부름으로 서울 신촌 역앞의 어느집에서 숙식을 하며 이른바 하드[아이스케키]를 배달하는 일을 하였다.

당시 삼진 하드라는 이름의 제품인데 보통 10원짜리 였다.

소매가가 10원이였지만 우리는 5원에 구입해서 2원을 남기고 여러곳의 구멍 가게에 배달해 주면 그집에서는 3원의 이익을 남긴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해태제과의 아이스크림은 전기 냉장고에서 판매되었으나 삼진 제품은 작은 통에 하드를 넣고 드라이 아이스를 종에 싼후 맨위에 올려 놓고 판매했다.

그 좁은 통안에 몇개를 넣든 다 팔려야하는데 재고가 남으면 반품이 안되어 내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대부분이 구멍가게이며 만화 가게도 몇군데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세상 살이에 아주 닳고 닳은 사람들이였다.

자기들 손해는 1원 아니 1전도 안되고 내가 손해보는 일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스타일이였다.

그렇게 될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가난한 시골출신이거나 어려서부터 장사로만 살아온 인생이였다.

그런 사람들과 부딪히고 장사하려니 나같은 촌뜨기는 그들의 밥이 되었다고 볼수가 있다.

 

대형 냉장고를 어느 가겟집 작은 마당에 비가림을 하고 설치한후 얼마간의 세를 내고 장사하는 사장님이 두 사람이였다.

이들은 전날 저녁 무렵에 화물 트럭으로 아이스 크림을 싣고 와서 가득 채운다. 

다음날 아침일찍 우리는 박스당 체크하고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싣고 각자가 자기의 길로 바쁘게 달려 나갔다.

우리 업소는  나를 포함해서 6명에서 7명이 함께 한다.

나역시 자전거의 두시편에 베니어 합판으로 만든 통에 가득싣고 출발한다.

그리고 어제 내가 싣고 나간 박스를 계산후 입금해주는 방식이다.

날씨가 더위지면서 이익도 나고 돈을 벌으니 기분도 좋다.

더구나 아침  10시 정도면 우리는 오늘의 일과는 거의 마친셈이다.

늦은 오후에 한바퀴 돌면서 수금을 하면 된다.

늦거나 귀찮으면 다음날에 얹어서 계산한다.

나는 업소의 작은 방에서 혼자 먹고 잤다.

모두가 기혼자라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는데 밥이 문제였다.

아침밥은 10시후에 우유 1병에 빵 한개로 해결했다.

점심은 라면으로 저녁도 라면으로 해결한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반품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말복이 지나면서 더위가 수그러지니 안팔리기 시작한다.

며칠 지나면 찌그러져 팔수가 없게 된다.

반품받은 제품은 내가 100% 손해보고 버린다.

너무 많아서 쓰레기 통에 넣으려다 그늘에 앉아서 한두 두개 먹기 시작한다.

어느날은 30개 40개도 먹었다.

이걸 먹으니 라면도 절약되고 우유값도 안들어 갔다.

하드가 유제품이며 당분도 많고 팥이나 땅콩같은 곡물도 들어있어 식사 대용으로 나를 살려주었다.

추석이 지나면서 날마다 적자를 기록한다.

배달하는 사람도 세네명으로 줄어 들었다.

할수없어 나는 백기를 들었다.

빚만 남기고 그만두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날 아마도 서울 올림픽 경기가 끝난 즈음일 것같다.

86아시안 게임과 2년뒤에 열린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은 고도의 성장을 이루며 국민 생활이 급격하게 향상되었다.

전국민 마이카 시대가 열리도 수많은 아파트의 건설로 무주택자도 많이 줄어들었다.

국가 경제의 발전과 함께 인건비도 상승하고 노조 결성이 쉽게 되었으며 일반 근로자들의 생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주머니 형편보다 전반적인 생활의 나아지면서 어느날에 수퍼에서 하드를 몇개 구입했다.

거의 20년전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헸다.

당시는 하드를 식사 대용으로 먹었으나 이제는 멋으로 사먹을수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리밥을 싫어하며 먹지 않으려 한다.

어린 시절에 가난해서 쌀밥 보다 보리밥을 너무 많이 먹고 자란 슬픈 기억 때문일것이다.

본인 역시 마찬가지 였으나 굳이 그렇게 보리밥이 싫지는 않다.

먹은 음식하고 원수가 되는 일은 내 인생에 없다.

그렇듯이 어려운 시절에 눈물과 함께 먹은 아이스크림 아니 하드 아니 아이스 케끼 오히려 지금 더 먹고 싶다.

몇년전에 오천원짜리 아이스 크림 한통을 앉은 자리에서 모조리 숟가락으로 파먹은 적도 있다.

지금도 하드나 아이스 크림은 얼마든지 잘먹는다.

슬픈 추억이고 기억이지만 오히려 그 시절의 맛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다.

 

무더운 여름날 건설 현장에서 오후 시간에 한개씩 나누어 먹는 맛은 꿀맛 이였으리라.

잠깐의 휴식과 함께 남들과 다른 추억도 소환해보고 그시절의 아픈 경험도 되새겨 볼수있었다.

많이 먹고 싶지만 노년의 건강을 생각해서 많이 참고 있다.

왜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은 못먹게 할까 세상이 밉거나 의사들이 야속하다.

이제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는데 아니 수퍼나 마트에 가보면 산같이 쌓여있는게 아이스 크림인데 그림의 떡인가?

가끔은 생각날때 먹으련다.

지금도 고깃집에서 아니면 갈빗집에서 배부르게 실컷 먹고 나면 출구 가까운곳에 무료로 주는 아이스 크림 통이 있다.

많이 담아도 두번 담아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 아주 좋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이것도 복이아니련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스크림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장소가 많이 생격나고 있다.

그것도 무인 판매이다.

누구 눈치 볼일없이 내가 원하는 만큼 담아도 된다.

특히 요즘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추운 겨울에 더 잘 팔리는 제품이 있다고 한다.

한여름 무더위에는 집집마다 에어콘이 가동되어 오히려 맵거나 더운 음식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추운 겨울 날씨에는 집집마다 난방이 너무 잘되어 집안이 덥기 때문에 아이스 크림이 더 잘 팔린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수없다.

 

아이스 크림등 일명 얼음 과자는 나에게 최애 식품이다.

아마 누구나 마찬가지 일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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