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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허리 디스크 이렇게 나았다.[243] 본문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T 스토리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991년 어느 여름날 우리 부부는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 소재 국립의료원을 찾아 가는 길이다.
평택의 서울 정형외과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 초음파 [CT]촬영이 목적이였다.
아직 젊은데 허리 통증이 심하고 무엇보다 오후 시간에는 왼쪽 다리가 너무 아파온다.
허벅지 부근이 아프더니 점차 아래로 내려 가고 있다.
발 뒷꿈치가 아파오니 이제는 걸음 걸이가 불편해 지고 있다.
발가락 까지 통증이 내려오면 완전 절망적이 될것이다.
통증을 참다가 아무곳에서나 잠깐 앉았다가 일어서면 조금 통증이 사라진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이다.
나이 마흔이 아직 멀었는데 이대로 살수는 없다.
당시 37살이였으며 지금으로 부터 33년전의 일이다.
집 가까이에 있는 한의원에서 침 치료했으나 별 효과도 없이 고생만했다.
다시 찾은 정형외과 당시에는 X레이 촬영만 가능했다.
흑백 필름이라 판독에 한계가 있었으며 어느 부분이 잘못된것인지 알수가 없어 서울의 큰 병원에 있는 CT 즉 컴퓨터 단층 촬영을 해서 확인해보자고 한다.
초음파 단층 촬영이라고도 부르는데 치료에 직접적 효과는 없다고 보면된다.
물론 의료보험의 혜택도 없다고 한다.
거기에 촬영된 영상은 다음날이나 되어야 확인이 가능하단다.
서울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다시 찾아가서 확인하란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국립 중앙의료원을 찾아갔다.
접수를 하고 CT 촬영만 하고 서초동에 있는 큰누나 집으로 찾아갔다.
하룻밤을 신세 지고 다음날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
지금도 기억나는 TV 프로그램 까치 며느리가 방송중이라 누나네 가족과 함께 시청했다.
다시 찾은 의료원 다시 접수하고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여름철이라서 반팔 T셔츠를 입었으니 겉으로는 아주 건장해보였다.
진료의사는 [도종웅 박사님으로 기억한다] 컴 사진 12장을 벽에 걸어놓고 필름 뒤에는 작은 형광등 불빛이 비치고 있어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분 저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신후 한 말씀하신다.
나는 필림만 보고 70대 노인인줄 알았는데...
젊은 사람아니 청년이 들어오니 놀라신 모양이다.
어쩌다가 젊은 사람의 척추가 이모양이 되었냐고 물으신다.
전문 용어로 경추 척추 요추를 설명하시며 4번과 5번의 척추뼈에 디스크라 부르는 원형이 있는데 뼈의 아랫 부분이 심하게 마모되어 압박을 받아 통증이 오는거라 설명하신다.
그러면서 척추만 치료되면 다리 통증은 그냥 사라진다고 설명도 하신다.
제가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수술이 가능하면 해주세요?
답변은 간단했다.
너무 젊고 아직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으니 밥이나 먹고 일은 하지 말란다.
즉 허리 숙이거나 허리에 힘이 들어가는 일은 하지 말고 편하게 살면 된다는 말 만들었다.
당시의 병원비는 상상 초월이다.
좋지 않은 답변을 듣고 내려오는 발길은 무거웠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하니 다리가 더 아프다.
돈도 벌어야하는데 일을 할수가 없고 놀고 먹자니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이다.
다시 찾아간 서울 정형외과 병원 원장에게 진료 받은 내용을 이야기 해주고 진단서도 보여 주었다.
자기가 더이상 할수있는 치료는 물리 치료하고 무리하게 일하지 말란다.
절망이다 아니 큰일이다 지금 한창 벌어놔야하는데 미래가 걱정이다.
아파보니 여러 병의 완치 여부가 사람을 살리고 죽일수있다.
상처가 났다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을수도 있다.
뼈가 골절되었다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접합이 되어 병이 낫는다.
하지만 디스크 추간판 탈출증은 저절로 나을수 없는 병이다.
축 늘어진 상태로 서점을 찾아 책을 한권 골랐다.
제목은 당신의 허리는 튼튼하십니까? 이였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보관하고있다.
앞 날이 캄캄한 절망속에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3년이 지난 1994년 1월에 나는 처음으로 제주도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에 다녀왔다.
겨울 산행으로 눈속을 걸어 왕복 12시간이 소요되는 긴 산행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등산 복장도 제대로 갖춰입지 못했으며 등산화 역시 랜드로버 세무가죽 신발을 착용했다.
사실 한라산은 남한 최고봉이지만 눈보라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봄날같은 기후이다.
그러니 산행 복장이나 준비물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다시 한달이 지나갈 무렵에 이번에는 강원도의 설악산 대청봉을 찾아 올랐다.
산행 지식 1도 없는 정말 목숨을 건 산행이였다.
장비도 부실한 무모한 도전 그것도 부부 동반으로 새벽 06시에 오색 약수터의 민박집을 나와 곧바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곳 역시 왕복 12시간이 소요되었다.
고생은 했지만 보람이 있었다.
대한 민국에서 내노라하는 높은 산을 한달 사이에 2곳이나 올랐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대견하다.
곧이어 치악산을 오르고 계룡산을 그것고 동계산행으로 눈과 추위속에서 진행되었다.
봄이되니 시간이 없어 산행도 잊고 살았다.
6월 어느날 선거가 있는 날이였다.
일찍 투표 마치고 중학생 아들이 심심해 하길래 둘이서 무작정 출발했다.
계룡산으로 갑사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금잔디 고개에서 자연 성능을 타고 문필봉 연천봉을 오른 다음 원점회귀 산행으로 마무리했다.
하지가 가까운 날이라서 낮 시간이 길어서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잊고 살았던 기억이 어느날 문득 생각이 났다.
어라 내가 디스크 환자인데 서울의 큰 병원에서 못 고친다했는데 그험한 산을 다녀왔는데 허리가 하나도 안아픈 것이다.
오히려 다리 통증도 잊혀졌다.
일반적이 생각이라면 디스크 환자가 산에 다녀오는 절대 금기라고 말할것이다.
그것도 동네 뒷산이 아닌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니 본인이 생각해도 이것은 잘못된 행동으로 생각되어진다.
그런데 그 험한 곳에 다녀오면 몸이 가벼워지고 허리 통증은 오히려 잊고 살아간다.
1997년 6월 첫 일요일에 지리산 무박산행을 신청했다.
남한 내륙에서 최고봉이며 [1915m] 말로만 듣던 지리산의 고행을 몸소 체험하는 그런 산행이였다.
당시는 등산화가 고어텍스가 아닌 소가죽 등산화로 무게가 많아 나가고 너무 딱딱해서 처음 착용하는 사람은 고생을 한다.
다행이 눈과 얼음이 없는 초 여름 산행으로 낮시간도 길어 여유가 많은 산행이였다.
새벽에 중산리를 출발해서 법계사를 지나고 천왕샘을 경유해서 정상인 천왕봉을 돌아서 장터목 산장을 조금 지나 백무동으로 하산 하는 코스였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면 산행하다 죽는줄 알고 급하게 컵라면을 먹은것이 하루 종일 뱃속을 들끓게 한다.
비교적 선두 그룹으로 백무동에 산행입구에 도착하는데 우리와 반대 코스에서 아침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객들이 오르기 시작한다.
오전 10시경에 하산이 마무리되었다.
아직 중간팀과 후미팀이 도착할려면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백무동을 떠나 평택에는 오후 4시경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인간의 몸은 자신의 컨디션이 최상일때는 많은양의 엔돌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통증도 멈추게 된다고 하더니 내가 직접 경험하고 있었다.
집에서 기다리던 아내의 걱정은 대단했다.
허리 아픈 사람이 몸이 불편해서 일도 못하고 노는 사람이 그 험한 지리산을 그것도 하룻밤 나가서 자고 들어오는 그런행동을 하니 걱정보다 불평이 더 많았을것이다.
병원에 안가고 몸이 회복되어 가고 통증도 점차 사라지니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글의 내용이 맞아 떨어지지만 당시에는 모든게 어리벙벙한 상태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였을것이다.
내성적인 성격탓에 단체 산행보다 나홀로 하는 이른바 독립군 산행이 적성에 맞았다.
문제는 위험성 사고가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겨도 혼자서 어쩌지 못하는 경우는 사망각이기때문이다.
당시의 휴대폰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조금만 산속으로 들어가도 먹통이된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단 낫다는 생각에 지참을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수가 없었다.
산행 경험이 짧아서 엉뚱한 곳으로 하산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같은 방향으로 내려서면 어느정도 희망이 있지만 완전 반대 방행으로 산을 완전히 넘어가면 아주 낭패가 된다.
치료효과를 생각해서 2000년 6월에 산악회 창립 회원으로 정식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정회원이면 한단에 두번은 산행을 갈수가 있다.
반강제로 해서라도 병의 치료를 앞당겨야했다.
지인들의 오해와 아내의 반감도 내가 감수해야 했다.
일반인들은 잘모른다 그 이유를...
허리 아픈 사람이 그것도 아프다고 일도 안하고 먹고 노는 사람이 그 험한 산에 가면 날라다닌다고 누가 믿겠냐고요?
당시는 디카 보다 필카라서 산행후에는 사진관 필름을 맡긴후 인화해서 들고 다니면서 보여주었습니다.
산악회 활동 하면서 인터넷에 카페 개설후는 모든 사진을 그것도 수십장을 아니 수백장을 끝도 없이 올리는데 이 사진은 혼자만 보는게 아니라 전국에서 모두가 볼수 있는 그런 사진이였다.
그 사진속의 내모습은 누가 봐도 디스크 환자의 모습이 아니란다.
표정이 가장 밝았으며 항상 선두그룹에 그것도 한곳도 빠짐없이 정상컷이 있었으니 모두가 오해할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거짓으로 연출할수도 없었으며 하고 싶어도 할줄도 몰랐다.
그렇게 몇년이 흐르고 등산의 정석 산행의 베테랑으로 올라섰다.
몸이 건강해짐을 스스로 가 느끼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 아니 즐거운 일이 있을수가 없었다.
2005년 봄에 힘든 결정을 내렸다.
평생해오던 직업을 바꾸는 일이다.
직장을 바꾸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업종을 바꾸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몇달을 고민하고 고민하여 결정했다.
별다른 학력이 없고 기술도 없으니 나는 오로지 허리만 편하면 월급이 적어도 감내 할수 있었다.
다시 5년후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귀촌을 행한다.
당시하는 일이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다른 병이 더 생길것 같아서다.
시골에 살아보니 흙위에서 흙과함께 생활하니 몸의 변화가 뚜렷해진다.
그후 예초기 사용 기술을 응용해서 돈을 벌고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번다.....
내가 생각해도 처음 초음파 사진 촬영이 몇년만 늦었어도 나는 내 몸에 칼을 대고 허리 수술을 할뻔했다.
당시는 일반적이 못해서 수술을 쉽게 권하지 않았다.
몇년 사이에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여기 저기서 허리 아프면 무조건 입원해서 허리 부분에 가로 약 30cm 이상을 절개하고 뼈를 조각 조각으로 열어본후 손질을 하고 다시 덮는 그런일이였는데 이것이 후유증이 대단했다.
거의 80% 이상이 재수술을 했으며 병이 낫는것이 아니라 병을 키운 결과로 나탔다.
다시 몇년후 부터는 수술이 아닌 시술 치료법이 나와서 지금은 아주 간단하고 성공률이 높다고 한다.
어찌됐던 본인은 아무 조치없이 등산으로 치유의 효과를 보았으니 다행이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지금 불편없이 살아가고 있다.
정말로 다행한 일이다.
최근에는 내시경으로 시술을 마친 사람도 후유증에 고생하고 있다.
물론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기에 모두 같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결국에는 모두 같은 증상에 같은 부위에서 발병 같은 고통을 받고 있어 별반 차이는 없다고 볼수가 있다.
내 몸속의 병은 자신이 치료하는 것이고 의사는 옆에서 보조만 해주는 사람일뿐이다.
의사들도 나이들면 모두 같은 길을 간다.
의사들도 아프며 고통을 받고 살아 간다.
본인의 확고한 의지만이 가능한 일이다.
자신있게 여기에서 말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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