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1,21 사태와 나 [234] 본문

오늘의 이야기.

1,21 사태와 나 [234]

현덕1 2023. 11. 6. 20:28

최인태의 세상이야기 T 스토리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님들께 감사드립니다.

 

1968년 1월 21일 우리는 이날을 1,21사태라 부른다.

당시의 생존자 김*조 우리는 그이름을 기억한다.

아직도 잠시 멈춘 전쟁의 상흔속에 우리는 살아 가고 있다.

당시 대한민국의 인구의 약60% 이미 고인이 되셨을거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죄없는 어린이들이 희생되는 뉴스를 보면서 이글을 적어본다.

어느 전쟁이든 민간인과 특히 어린이 노약자의 죽음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당시 국민학교 졸업반으로 마지막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설날은 1월 30일날이였으니 일주일정도 남은 싯점이였다.

충청도 깊은 산골에 TV나 라디오도 별로 없었으며 다행이 몇 집은 스피커를 듣고 있었다.

뉴스에 전해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종군기자의 현장음 같은 분위기 였다.

6,25전쟁의 총성이 멈춘지 10여년이 조금 지난 시기였으니 모두가 민감할수밖에 없었다.

무장 공비가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 뒷산까지 쳐들어왔다고 하니 전쟁이 다시 일어난줄알았으리라.

이틀뒤인 23일은 미국전함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었다고 하는 뉴스가 전해진다.

 

동네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지난 전쟁의 이야기만 하고 계셨다.

자세한 소식은 없고 대통령 목숨까지 위태롭다는 그리고 서울 시내의 총격전 이야기 뿐이였다.

27일은 경천장날이며 설대목장이여야하는데 모든게 움츠러 들고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양지 바른 담벼락 아래 모여 다마치기[구슬]놀이에 열중하고 있는데 장구경 가시던 할아버지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걱정을 하신다.

오늘 당장 인민군이 쳐들어오면 저 아이들이 제일 불쌍혀하시면서 혀를 끌끌 차신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얼어 버렸다.

정말로 우리는 오래 살지 못하고 낼모레 죽는단 말인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덜덜 떨면서 집으로 돌아오니 스피커에서는 아직도 잔당을 소탕하지 못하고 총격전을 하고 있단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푸에블로호 선원 모두가 북한으로 끌려 가고 배는 나포되었다고 한다.

그 해군 병사들의 목숨을 보장할수 없다고 전해진다.

 

서울에서 설을 쇠러 형님과 누나가 내려오셨다.

이웃집에 누구 누구도 고향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마을 어귀에는 무서운 이야기만 돌았다.

서울에서 직접 총소리를 들었다거나 무장 공비를 정말로 보았다거나 길거리에서 총맞아 죽은 시체를 보았는다는 조금은 과장된 거짓말이 보태진 말들이 난무했다.

그러니 어린 우리들은 심한 공포감에 떨어야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모두 헛소리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는것이다.

왜 그랬을까?

내가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것이다.

설이 지나고 서울로 돌아가려는데 울어머니는 울면서 붙잡고 가지 말라하신다.

지금 서울가면 모두 죽을거야 그러니 가지 말어....

그래도 며칠후 모두 서울로 올라 갔다.

 

엎친데 덮치느라 이웃 동네 누구네 아들이 월남전에 전사 했다고 전사 통보가[전보]왔다고 동네가 초상집 분위기라하네요.

이미 인근 동네에서 여러명의 전사 통지서가 날아왔을때이다.

친구의 형님도 우리 형님의 친한 친구도 건넛 마을의 장손도 월남에서 전사했다는 암울한 소식만 들려 온다.

경천 주막거리 소방서 앞의 소리사[전파사]에서 노래만 틀어주는데 요사이는 정오 뉴스도 틀어 놓는다.

볼륨을 맥시멈으로 해놓으니 길거리에서는 듣기 싫어도 귀에 들어 온다.

김*조 인터뷰도 들려주고 박대통령이 제대 군인들 상대로 예비군도 만든단다.

어른들은 군시절 이야기 부터 난리통에 빨갱이 만행이라면서 신나게 이야기 한다.

모여 앉기만하면 사람 수십명 아니 수백명이 죽어 나가는 그런 이야기들뿐이였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우리 아이들은 경험도 못해본 그런 무서운 이야기들뿐이니 하루 하루가 힘들게 흐른다.

 

당시 우리동네 마을 어귀의 밭 가장자리의 돌무더기를 괭이로 파보면 사용하지 않고 묻어둔 총알이 나온다.

그대로 고물상에 가져가서 엿하고 바꾸지만 가끔은 저수지 용수로의 시멘트 다리 아래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곳에 총알을 던져 넣는다.

잠시후 불에 달궈진 총알이 튀어나간다.

이때 화약이 터지는 소리도 크게 들린다.

만약에 그 총알이 몸에 맞으면 사망이거나 심한 부상으로 영구장애가 될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재미로 그 놀이를 즐겼는데 이제 전쟁이 일어나서 그 총알을 맞으면 죽을수있겠다하는 생각에 앞이 캄캄해진다.

이제는  총알을 찾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어제까지는 그냥 장난감이였지만 이제는 나를 죽음으로 밀어 넣는 쇳덩어리일뿐이다.

경천 장터에서 만화책을 친구들이 빌려와서 헛간방에서 신나게 보는데 어느 만화책의 내용이 6,25 전쟁을 그린 내용이였는데 정말로 실감이 난다.

아까 낮에 스피커에서는 무장공비 소탕 소식과 김*조 일당에 대한 이야기와 북한 나포된 미군 전함 푸에불로호의 나쁜 소식만 전하고 있었다.

 

이제 봄이 오는 어느날에 우리는 괘등산으로 늦은 나무를 하러 떼지어 몰려갔다.

산의 중간 지점에서 솔방울도 따고 갈퀴로 긁어 모으고 잔가지도 주워모으는데 갑자기 어른 여러명이 저 아래에서 빠른 속도로 올라 오고 있었다.

어라 모르는 얼굴들이다.

이동네 어른들은 모두 아는 얼굴인데 이상하다.

그런데 이분들 말 한마디가 없다.

그대로 우리 앞을 스쳐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데 속도가 엄청 빠르다.

우리는 넋이 나간 상태로 그냥 바라만 보았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서 곧 바로 내려 왔다.

나뭇짐을 집에 내려놓고 팽나무 거리로 나왔는데 경천 장터 부근에서 신작로에 흙 먼지를 일으키며 군용 트럭과 지프가 달려 오고 있었다.

팽나무는 지금도 그대로 서있다 트럭이 정차하더니 무장 군인들이 집집마다 들어 가서 수색을 하며 온동네를 뒤집어 놓았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이상한 사람들 보았냐고 물었으면 곧바로 대답을 했을텐데 동네를 다 뒤집어 놓은 후 혹시 이러한 사람들 못보았냐고 묻는다.

한시간도 안지났으니 곧바로 내가 본 그대로 이야기 했다.

이야기를 듣더니 높은 사람이 손을 들어 올리자 모두 차에 타고 다롱고개를 넘어 석종리 방향으로 달려 넘어 갔다.

군인들이 떠나고 동네 어른이 너희들이 정말 보았냐고 되묻는다...

어른들은 일하느라 못봤으니 우리에게 확인을 하는 것이 였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실제 상황이 아니고 민간인 복장을 한 군인들이 공비 역할을 하고 훈련에 참가했다고한다.

그래도 용감한 군인 무리들과 조우하고 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내일 당장 김일성이가 내려와도 저렇게 용감한 국군 아저씨들이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지금부터 55년전의 일이였다.

이제 내 나이 70줄에 돌아보는 당시의 어른들 말씀과 행동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걱정해주시는 할아버지들 이제 모두 안계신다.

그분들의 걱정은 비껴 지나갔다.

아직도 휴전 아니 정전의 그 상태를 유지하지만 우리는 평화롭지 않은 평화를 유지하며 늙어간다.

인생 중반부터 운전면허를 소지하였으며  마이카[자가용]를 구입해서 살고있으며 무주택의 설움도 멀리 보내고 아파트나 주택을 보유하며 살고있다.

해외 여행도 다녀오고 제주도를 몇 번이나 구경했으며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서 구경한다.

 

1,21 사태이후 판문점 도끼만행,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강릉 앞바다 잠수정 침투사건등 1983년도인가 미얀마[버마] 아웅산 폭파 사건으로 정부 고위인사들이 대거 사망하는사건등등 우리는 북한의 김일성만 죽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그 아들 김정일이도 죽고 그 자식놈 김정은이 이넘도 악랄하다.

늑대 피해 산넘어 가면 호랑이가 기다린다고 하더니 김일성이 보다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는 넘이다.

이제는 내일 죽어도 호상이라는 농담으로 인생 늙으막을 편하게 살련다.

아직도 김*조는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1974년 육여사 저격사건 그리고 1979년 10 26 사건 이때는 동원 예비군 신분이였다.

정말로 소집되면 전방에 배치되어 현역병들의 총알 받이가 된다는데.

죽어도 정말 재수 더럽게 죽는 일인데 말이다.

그모든 역경을 이기고 오늘까지 살아 남았다.

 

1월 22일 경천 장날은 그런대로 평화로웠다.

설은 며칠 남았지만 작은 대목장으로 제법 크게 장이 섰다.

떡국떡을 만드는 방앗간은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간다.

몇년전만 해도 집에서 쌀을  삶은후 메로 찧어서 큰 밥상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떡가래를 만들어야했다.

물기가 조금 마르면 어슷썰기로 떡을 썰어 말렸다.

그렇게 힘들게 하다가 갑자기 떡 방앗간이 생겨났으니 그 인기는 요즘의 bts 급 정도였을것이다.

라디오나 스피커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가도 산사람 들은 먹어야 했으며 설날 차례도 지내야했다.

우리 선조님들은 당신은 굶어도 조상님은 섬기는 일은 지키셨다.

우리는 설빔은 생각도 못하고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슬픈 소식을 들어야 했다.

하루 하루를 죽음 생각하는 어린 나자신이 불쌍해 보였다.

그냥 동네에서 떠도는 소문같으면 무시하겠는데요.

스피커에서나 라디오에서 날마다 아니 시간마다 뉴스에서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더욱 실감 났다.

 

5학년 어느 여름날에 학교 선배가 냇가에서 멱을 감다 주웠다는 권총을 들고 학교에 왔다.

나도 옆에서 실물을 보았지만 너무 녹이슬어서 그냥 권총의 형태만 보였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그 무서운 총이라니 등이 오싹해온다.

1 21사태가 진정되고 학교 운동장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모여있다.

예비군 창설이라나 뭐라나 당시에는 예비군이라는 말이 어색하고 아무런 실감도 나지 않았다.

어느날에 형님이 산에가서 아카시아나무를 베어왔다.

톱으로 자르고 낫으로 껍질도 벗기고 자귀로 다듬고 고생을 하신다.

그런데 우리집만 그런게 아니고 여기 저기서 무엇을 만드느라 요란하다.

며칠간 공들여 만든것은 이른바 목총이였다.

예비군도 군인인데 총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개인별로 목총을 만들어 어깨에 메고 모였다.

어린 우리가 보아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몇 자루는 제법 총에 형태인데 어느 아저씨는 지게 작대기 비슷했다.

아마도 m1 소총이나 칼빈을 흉내낸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그 총을 어깨에 메고 운동장에서 제식훈련을 하는데 제법 군기가 들어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며칠후면 정말로 김일성이 서울을 함락시키고 공주까지 내려올 판이였으니까요?

 

1969년말인가에 무슨 이유로 군대 가지 못했던 청년들이 울상이 되었다.

소위 방위병으로 영장이 발부 되어 각자 면사무소 호병계 아저씨가 집집마다 찾아 가서 전해준 모양이다.

대부분이 건강상의 이유로 입대하지 못하고 나이만 들었는데 군대라니 어느집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미 장가들어 아이까지 낳고 가정을 꾸렸는데 군대라니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싯점에서 말이다.

얼마후 지서마다 정말로 못생긴 군인들이 보였다.

그리고 면사무소에도 무기고라는 건물에도 해안선의 철책이 있는곳에서 목격이 되었다.

군인이라면 논산 훈련소가서 훈련받고 전방으로 기야하는데 이것은 도시락들고 걸어서 자전거타고 왔다리 갔다리하는 군인 농삿일이 아무리 바빠도 논밭에 가지 못하고 멀때같이 서있어도 지정된 장소에 있어야했다.

 

1 21 사태는 우리나라에 군대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예비군이 창설되고 방위병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남녀 고등학교에서는 교련이라는 군사훈련 과목이 신설되어 준 군대로 육성이 되고있었다.

예비군도 수시로 비상 훈련이라하여 밤 낮없이 소집해서 살고있는 마을 주변을 지키는 훈련을 하였다.

본인도 1977년 늦은 나이에 63훈련단으로 소집 명령을 받았다.

3주 교육후 169연대에서 경계병으로 1년 근무후 소집 해제되고 예비군에서 민방위까지 45세 나이까지 자유롭지 못했다.

 

세상에 어느 종교도 전쟁을 막지 못한다.

일부 종교는 전쟁을 지향하는듯하다.

현대전은 땅따먹기가 아닌 인류의 재앙으로 남을것이다.

소설이지만 삼국지 전편을 읽어 보아도 이념이나 종교는 1도 없는 그야말로 땅 따먹기 전쟁 놀음이였다.

오늘 벌어진 지구상 2곳의 전쟁은 애꿎은 인간의 목숨만  빼앗아 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승리한 들 러시아가 승리한 들 무엇이 남겠는가?

하마스의 철없는 선제 공격으로 자신들 뿐만 아니라 가자지구의 죄없는 생명들만 꺼져 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소탕한들 무엇이 남겠는가? 

위로는 헤즈볼라가 버티고 있는데..

그위로는 레바논이 그리고 옆에는 이란이 두눈을 크게 뜨고 쳐다 보고 있다.

예수가 고향에서 다시 태어나도 풀지 못할 일이 오늘 벌어진 전투이다.

전 인류가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날까지 남을 전쟁이리라.

 

그래도 이땅에 다시는 전쟁은 안된다.

70여년전에  수백만명의 목숨이 사라져갔다.

그들은 자신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지 못한채 눈을 감아야 했다.

신의 실수로 태어난 근대의 인물들 히틀러와 김일성이다.

그외 캄보디아의 .... 유럽의.....

우리는 김일성이 이넘만 기억하면 된다.

이러한 비극을 막는 방법은 우리가 강해지는 길뿐이다.

경제력으로 군사력으로 이념으로만 가능할것이다.

어린 나이에 겪은 1 21사태를 55년이 지나 소희를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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