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同窓會의 所懷[228] 본문

오늘의 이야기.

同窓會의 所懷[228]

현덕1 2023. 8. 22. 15:00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T 스토리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동창회란 글자 그대로 같은 교문과 같은 창문을 열고 닫고 드나들었던 같은 또래의 친구들 모임입니다.

초등학교 동창생, 중학교 동창생,고등학교 동창생, 대학교는 학번이 동기생이라고도 부르고요.

아무래도 초등학교는 6년이란 긴세월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며 더구나 어린시절의 소꿉 친구라서 더 기억에 남을겁니다.

중고등학교는 3년의 시간뿐이며 남녀공학이 아닌 학교는 동성끼리만 보낸 시간이라 아기자기한 맛은 한참 덜 할겁니다.

본인은 초등학교 시절이 전부라서 그외 언급은 마치고요.

대도시의 학생들은 이른바 반창회라 부른다지요.

한해 졸업하는 학생이 너무 많아서 [수백명일 경우도 있습니다] 전부 모인다해도 서로 기억하지 못하며 같은 추억도 소환하지 못할겁니다.

그래서 나눈것이 소위 반창회[班窓會]이지요.

6학년이나 중고등 3학년때 같이 공부했던 동창생들만 모인답니다.

 

저희는 1962년 3월 입학식을 하고 3개반으로 나누어 공부를 시작하였답니다.

입학생은 남녀 170여명이 넘은 걸로 알고있습니다.

1960년대 초에는 보릿고개 시절이며 특히 여자 아이들은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잦았답니다.

교무실에서 직접 받은 졸업생 명부에는 남83명 여 86명으로 169명이 적혀있습니다.

1967년 6학년을 마지막으로 겨울방학 끝나고 다음해 2월 16일 졸업식을 마친 경천 국민학교 19회 졸업생입니다.

저는 졸업장 번호가 1811번이구요.

졸업 앨범에 얼굴이 보이는 학생과 동네별로 확인해보면 그 숫자를 상회합니다.

이유는 1년 선배들이 졸업을했지만 더 좋은 중학교 진학을 위해 1년 남아서 우리와 함께 공부를 하고 졸업을하였습니다.

이친구들을 따로 분류해도 맞지 않고요.

중간에 전학간 친구들 그리고 우리 학교에 전학을 온친구의 비율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인의 이름이 제가 올린글에 안보이면 서운해하거나 실망할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네요.

최대한 제 기억과 여러 친구들에게 확인하기도 합니다.

2023년으로 우리는 동창회 주기가 31회차입니다만 코로나 만나지못한3년을 더 하면 34년차가 되네요.

그러니까 34년전인 1989년에 첫 모임이 이루어진것이라 할수있습니다.

 

친구는 만드는게 아니라 긴 세월 한가운데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젊은날의 친구는 만들거나 자연스레 만들졌다고 할수가 있지요.

황혼기의 친구는 세상 그무엇과도 비교가 되지않을뿐더러  돈주고 살수도 없으며 갑자기 만들어지지도 않습니다.

나이들면 가장 무서운것은 질병이지만 이것을 이기는 무기는 오랜 친구입니다.

어린시절의 친구들과의 대화는 동심이며 우리들의 잊혀진 세월의 무게 아래 숨겨진 보물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시절의 추억도 아름다운 기억도 묻혀진 이야기일뿐일겁니다. 

정말  순수하고 깨끗하며 투명한 그 무엇이 있다면 그 시절의 수많은 이야기일겁니다.

70이 넘은 황혼의 인생길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수있으며 외로움을 잊고 사는 지름길일겁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만나 함께 걸어가면서 나누어야할 황혼의 행복 바이러스가 아닐까요?

 

동창회날이 다가오면 괜스레 설레며 기대가 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인생에 단 한번이며 단 하나뿐이기도 합니다.

내 삶에 깃들어진 소중하고 감사한 날이며 친구들과의 만남 또한 저에게만은 특별하기도 하답니다.

사람마다 가슴속에 간직하는 추억은 다를겁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추억이라할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처음 참여했을때는 1990년대 초 그러니까 2회차 인지 3회차인지 정확하게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후 다른 일정으로 두세번 결석은 하였지만 꾸준하게 참석해왔습니다.

55년전에 헤어진 친구들 약 170여명의 만남을 그려보겠습니다.

남 49%.

여 51%.

2023년 모임에 약 27명이 모였습니다.

2019년 봄 만남에도 22명이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약 18%의 참석률이네요.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이 집계되지 않아서 정확한 숫자는 알지못합니다.

약 9%대로 예상만해봅니다.

 

동창회 모임에 100%참석은 사실상 불가능할것입니다.

동창회 친구가 한두명이라면 가능은 하겠지만요.

저희 처럼 170명이 넘으면 적은 숫자가 아니니까요?

35년간 개근한 친구도 있구요.

저는 위에서 밝혔듯이 몇번 불참했네요.

딱 한번 참여한 친구도 몇명되고요.

오고 싶어도 멀리 떨어진 외국에 살아서 못오는 친구도 있지만 그 마음을 알수는 없기에 정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까하는 의구심도 드네요.

몰라서 못왔다는 말은 나는 바보 멍청이 못난놈이다라하고 광고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땅에 아니 외국에 살아도 인터넷에 손가락 한번이면 다 알수가 있고요.

친구에 친구를 통해서 아니면 선후배를 통해서 고향에 몇번 찾아왔다면 귀가 있으면 분명 들었을테니까말입니다.

몰라서 안온것은 100% 거짓이고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가 정답일겁니다.

이유는 아무도 모르는 본인만 아는 일이니까요?

그 친구들 머릿속에는 별다른 의미도 없으며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까워서 일겁니다.

예를 들어 내가 성공을 해서 큰 인물이 되었으면... 아하 그런 사람이 있는데 정말로 안옵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었는데... 정말 있습니다 아마도 소위 말하는 레벨이 안맞아서일까요?

내가 잘나도 너무 잘랐는데 친구들이 보태준거 하나도 없는데 뭐.... 있습니다 정말 있습니다, 이름을 못밝히네요.

아마도 올림픽 전후 멋진 세단 한대 있으면 자가용 자랑하러 분명 왔을건데 말입니다.

울 아버지 이동네에서 머슴 살아서 꼴도 보기 싫어서... 울 아버지 이동네에서 쫄딱 망해서 밤에 서울로 올라갔는데... 그래서 안옵니다. 

 

과거를 회상해보면 친구들 험담하는것 같아 망설였지만 그래도 여기 남겨야겠습니다.

5학년 6학년때 잘나가던 친구들 너무 부러웠던 그 친구들 열손 가락에 있던 친구들 정말 1명도 안옵니다.

동창회는 성적순도 아니며 인물 순위도 절대 아니며 더구나 경제력은 더더욱 아니며 자신의 가정 생활도 여기에서 필요없는데도 말입니다.

소풍갈때 용돈 많이 들고 오던 친구들 통신표 받았을때 올백 올수 받았던 친구들 운동회날 상으로 받은 공책이 10권이 넘던 내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친구놈들 남녀이지만 신의 심술인지 정확하게 1명도 안옵니다.

선생님도 몰랐던 아니 평생 모르고 정년하신 선생님들이 절반이 넘었다는 그행동의 대상이였던 친구들 정말로 안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하면요.

선생님이 교과서를 들고 한참을 설명 하시고 문제도 풀어본 후 학생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자~ 이 부분에 대해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명이 동시에 손을 듭니다.

이때 선생님이 둘러 보면서 자신도 알게 모르게 공부 잘하는 성적 순위 5등 안쪽의 아이들만 콕찝어 너 일어나 답을 말해봐한답니다.

왜냐면요 선생님들의 교육방식이 타성에 젖어서 저 공부 못하는 아이가 손을 들어도 오답이 뻔할것으로 미리 지레 짐작하고 건너 뛴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한번에 정답을 말하면 자신도 기분이 좋았을테니까요?

지금도 현직 교사들의 50%는 이런 현상을 보일것으로 짐작해봅니다.

그래서 공부 못하는 친구는 아예 정답을 알아도 손을 들지 않는거랍니다.

 

이제 우리의 은사님들도 돌아 가시고 세월은 흘러서 우리도 환갑 진갑 다 지나고 이제 칠순의 문턱도 넘어섰네요.

남은 시간은 정말로 소중하고 소중한 한 시간입니다.

무엇을 망설이고 얼마를 더 고민해야 하는가? 묻고 싶네요.

자존심 때문이라면 이제는 버릴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한번도 안갔는데 늦은 나이에 뭐하러 가나 이런 생각이라면 당신은 아직 철이 덜 들었거나 인생이 참으로 불쌍하다고 생각해봅니다.

55년의 시간이 길지만 어린 시절의 우정이라면 얼마든지 극복 할수 있으며 가능한 일이지요.

본인이 싫다면 할수없는 일이지만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런 친구들이 많이 있다면 저 자신도 못난 부분이 있다고 볼수가 있습니다.

전체의 18% 참석률이면 열명중에 여덟명은 투명 인간 같은 존재일겁니다.

 

이들에게는 다음의 이야기가 어울릴것 같습니다.

초저녁에 도둑이 담을 넘을려고 기웃대는 모습을 주인이 거실에서 내려 보고 중얼거립니다.

담장을 넘어 봐라 내가 가만두지 않을것이다.

도둑이 담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하는 말이 방안으로만 들어와 봐라 아주 죽여 버릴테다.

도둑이 안방에서 물건을 훔치려 하자 주인이 말합니다.

물건만 훔쳐 봐라 내가 상대해 줄것이다라고요.

도둑이 물건을 훔쳐 가지고 담을 넘어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이때도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음에 또 오기만 해봐라 내 가만있지 않을것이다라고요.

그렇습니다.

하나 하나의 생각과 행동에 다음을 붙이는 일입니다.

그런 친구들은 마지막 단계에서 이렇게 말할겁니다.

도둑이 들어 오기 전에 잡을 것을 친구들이 기다려 줄 때 찾아 갈것을 하면서 말입니다.

 

모든 친구들의 생각과 사상이 같을수는 없을겁니다.

졸업할때 까지는 비슷하게 살았지만 그후에는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을겁니다.

그런데 그길이 다 같은 4 차선 포장 도로는 아니였기 때문에 서로가 다른 삶으로 나누어 살아왔습니다

누구는 비포장 도로를 달렸을것이며...누구는 외진 산속의 구부러진 길을... 누구는 진흙탕 길을...

누구는 고속도로를 달렸을것입니다.

서로가 다른 길을 달렸지만 확실한 것은 모두가 같은 길을 달린겁니다.

목적지도 같았을거구요.

친구들 모임에 참석한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는 분명있구요.

지난 시간에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걷어서 모교에 장학금으로 적은 돈이지만 보탰습니다.

버스 대절해서 야유회도 다녀오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돈독히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마음은 함께 하고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한 친구들도 있을겁니다.

제글이 불참한 친구들 비판하는 모양새로 비춰질까봐 염려되고 걱정도 됩니다.

 

산과 들이 초록으로 물들고 아지랑이 피어오를때 우리는 도시락을 들고 신원사로 봄 소풍을 갑니다.

학교에서 모여서 도보로 십릿길을 걸어갑니다.

당시는 저수지가 완공되기 전이어서 양화리 마을을 지나 곧바로 걸어 갔습니다.

흙먼지 날리며 줄지어 조잘 조잘 가볍게 걸어 갑니다.

가을 소풍은 저학년은 신원사이지만 고학년은 갑사나 노성산으로 다녀오기도 했구요.

6학년 졸얼반은 수학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만국기 바람에 날리는 운동장 오늘은 운동회날입니다.

달리기 경쟁에서 꼴등만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남학생들은 기마전이 가장 기억에 남구요.

흙바닥에 뒹글며 함께 보낸 6년의 세월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였을겁니다.

그시절의 우리들 국민학교 시절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 기쁨으로 표현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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