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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나의 그 시절 [170] 본문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블로그입니다.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979년 10월 어느 날 마산에 가려고 대전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에 승차했는데...
버스 안에서 한숨과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 같은 게 없어서 정말 답답한 시절이었습니다.
버스가 빨리 가서 일찍 집에 도착해야 한다면서 어느 아주머니의 탄식에 가까운 하소연이 사태의 심각성을 이야기해주네요.
통행금지 시간이 밤 10시로 두 시간 앞당겨졌는데...
사람들은 이미 9시만 되면 전부 문 닫고 철수한답니다
그러면서 버스 내부에서는 웅성 웅성 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서로가 격려의 말도 하고 있네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괜히 걱정도 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도 했습니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마산에 늦지 않게 도착했습니다.
겁에 질려 저도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다음날 도로에는 군용 차량들이 줄지어 돌아다니네요.
신문에 보니까 위수령이 발령되었답니다.
계엄령은 알겠는데 위수령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려 부림시장에 들르고 창동 거리를 걸었는데 사실 무섭더라고요.
통행금지 시간도 그렇고 걱정이 되어서 곧바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당시에 본인은 제대 1년도 안된 동원예비군이었으며 미혼으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양덕동에 살고 있어서 저녁 식사 마치면 동마 다방에 들러 석간신문 보고 커피 한잔 마시는 것이 일과인데...
저녁 9시 30분에 나가 달라 하네요.
문 닫는답니다.
이런 신문 반도 안 읽었는데...
캄캄한 밤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무장한 군인들이 2명이 조를 이뤄 골목 입구마다 서있더라고요.
아마도 통금 시간을 기다리는 것 같더라고요.
말을 붙여도 대답이 없더군요.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다시 다방에 가서 짧은 시간 신문도 읽고 TV 뉴스도 잠깐 보는데...
9시 뉴스에서 박 대통령 삽교호 방조제 준공식 장면이 방송이 되더군요.
삽교호는 아산만 방조제 바로 근처이고 제가 살던 평택과는 거리가 가까워서 관심 있게 시청하였습니다.
그날이 10월 26일 저녁이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해서 창원 39사 정문 근처에서 작업하고 있었는데...
당시 하는 일은 정부에서 넝마주이[일명 양아치]들의 작업장과 숙소를 마련해서 한 곳에 정착시키려 건물을 짓는 현장이었습니다.
아침 시간에 건설 자재를 싣고 온 화물차 기사가 차량 내부의 라디오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소리 지르네요.
박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요.
서거라고도 하고 유고라고도 부르네요.
모두가 일손을 놓고 라디오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동원예비군 동원령이 발표될 거라는 말도 나오고요.
당시는 박 대통령이나 김일성 둘 중에 누구 하나 죽으면 곧바로 전쟁이라는 낭설이 주류를 이뤘거든요.
아! 내 인생 이대로 전쟁터 총알받이로 끝나는 건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더군요.
저녁식사 마치고 곧바로 다방으로 달려가서 TV를 보려는데 사람들이 꽉 차 있더군요.
구석에서 간신히 시청하는데 같은 내용만 반복되고 다행히 휴전선에 이상 없다고 전해주네요.
마산시청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날 오후에 지인 몇 명과 서원곡 계곡으로 무학산 정상까지 산책도 다녀왔습니다
1년 후 1980년 가을에 스산한 공기가 내 가슴을 억누르며 흘러갔습니다.
5월에는 광주사태가 일어났으나 언론 보도가 워낙 통제되다 보니 당시에는 사실 잘 알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는 삼청교육대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살았거든요.
객지에서 홀로 사는 본인은 대상자 1호 사냥감이었는데...
다행히 안전하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몇 년 후 주변의 또래 친구들 소식을 들어보니 오싹해집니다.
처음에 만난 친구의 고백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일이 정말 있었나 보네 하는 정도였거든요.
뉴스에서는 잠깐 동안 봉체조하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정신 교육 며칠 하면 퇴소한다고요.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너무 다른 이야기더군요.
이 친구들은 정말로 지옥을 경험했더라고요.
ch란 친구의 경우는 오래전에 파출소에서 행패 부린 적이 한번 있었는데 현직 경찰이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화풀이 대상으로 잡아갔더라고요.
k라는 친구는 극장에서 영화 보고 혼자 나왔는데 골목길 몇 걸음만에 군인 둘이 양쪽에서 잡아 지프차에 태웠다더군요.
상황은 이렇습니다.
그 친구가 극장에서 나오기 직전에 이 골목으로 불순분자가 달아났다는 겁니다
그자를 잡으려 들어왔다가 젊은 청년이 혼자 걸어가니 그대로 삼청교육대로 넘어갔답니다.
다른 지인의 이야기는 더 황당합니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골목이 시끄러워지고 최루탄 냄새가 진동해서 잠 못만 입고 대문을 열고 확인하려는 찰나에 경찰인지 군인인지 손을 뒤로 꺾은 후 그대로 잡혀갔는데 그곳이 삼청교육대였답니다.
모두 목숨은 부지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후유증은 대단하더군요.
미리 알았으면 산속으로 숨어들었겠지만 전혀 1도 알 수 없는 하루하루였고요.
그 상황에서도 술 한잔 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포장마차도 드나들었지만 워낙 겁이 많아서 초저녁에 곧바로 숙소로 돌아와서 그런 고생은 면한 것 같더라고요.
통금 위반 한번 없이 성장했고 음주운전 단속된 적 1도 없으니 범생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 나이 26살에서 30대 초반이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산전, 수전, 지하전, 공중전, 시가전, 기마전에 육박전까지 모두 겪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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