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이런 숫자 단위는 의미가 없다 [147] 본문

오늘의 이야기.

이런 숫자 단위는 의미가 없다 [147]

현덕1 2022. 2. 6. 21:17

최인태의 세상이야기입니다.

찾아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만난 세명의 남자 대화입니다.

수놈들은 자기 우월주의가 강해서 어찌해서든 남보다 뒤처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지요.

첫 번째 남자가 말을 합니다.

우리 처음 만났으니 통성명과 나이를 알고 지냅시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옆에 남자가 말을 시작합니다.

나는 아무개이고 나이는 31살입니다.

다시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두 번째 남자가 말을 합니다.

나도 아무개이며 나이는 33살입니다.

침묵과 정적이 흐른 후 세 번째 남자가 말합니다.

그러니까 내 이름은 이렇고 나이는 35살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일 처음에 나이를 밝힌 사람은 무조건 손해입니다.

아마도 그중에 나이가 가장 많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초면에 거짓이라도 이미 나이를 밝혔으니 당분간은 믿을 수밖에 없겠지요.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1년 정도 지난 어느 날 같은 시기에 면허를 받은 세 사람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격하게 토론을 합니다.

소위 말하는 운전 영웅담이지요.

첫 번째 남자가 자동차의 속도에 대하여 말을 합니다.

야 내가 말이야 어제 고속도로를 180km 달렸는데 아무도 따라오질 못하더라고.

즉시 옆에 남자가 말을 이어갑니다.

나는 자유로에서 어젯밤에 200km 이상 달려봤는데 아주 전율이 느껴지더라고.

마지막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던집니다.

그저께 한밤중에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 외제차로 300km까지 밟아봤는데 역시 차가 좋더라고.

그렇습니다.

거짓이지만 명을 재촉하는 영양가 없는 대화입니다.

달릴 수 있는 속도지만 대한민국 어느 도로에서나 속도위반이면서 불법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주태백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여기 모인 세 사람의 주량은 들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레나룻의 남자가 몸을 흔들면서 한마디 던집니다.

아이고 머리 아파 죽 갔네.

어젯밤에 소주 5명을 마셨더니 속도 쓰리고 힘들고만...

얼굴이 붉으스레 한 남자가 말을 이어받습니다.

나는 맥주 1박스에 소주 3병을 말아마셨더니 염라대왕이 부르는 줄 알았네 그려.

옆에 듣고만 있던 남자가 목에 힘을 주며 떠들기 시작합니다.

아니 그것도 술이라고 마시나 나는 말이야 어젯밤에 양주를 병나발 불었다네.

위스키와 보드카 3병을 아주 싹 비웠지.

양주라 그런지 속은 아주 편해 오늘 더 마셔도 될 것 같아...

 

그 반대로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낚싯꾼과 노름꾼의 대화 내용이지요.

이 둘의 숫자 단위도 무의미하지요.

강태공의 거짓말은 이미 세계 특허청에 특허를 발급받은 지가 언제인지 모릅니다.

아마도 기원전부터일 겁니다.

이들은 정확한 숫자는 불필요합니다.

그냥 한 뼘이거나 무조건 월척이지요.

그것은 그나마 잡은 고기일 것입니다.

아마도 놓쳐버린 고기를 표현한다면 자신의 팔뚝 아니 허벅지까지 내 보입니다.

옆의 남자는 자신의 키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합니다.

아 ~ 아깝다고...

노름꾼은 작은 방에서 나체로 밤새 노름했는데 아침에 돈을 세어보니 돈이 모자란다네요.

어디로 갔을까요?

감추고 싶어도 감출 곳이 없는데...

부자간에 노름을 한 후 돈을 세어보면 둘 중에 하나는 분명 액수를 속인답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이만큼 돈을 잃었다네요.

둘 다 늘 하는 말은 특허받은 거짓 말뿐이지요.

 

베트남전에서 귀국한 병사의 무용담입니다.

이분은 초기 파병으로 우리 동네에서 제일 먼저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어느 경천 장날인데 장마당 한편에 약장수의 원숭이 구경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모여계시네요.

특히 어머니들이 더 많이 모여 계시네요.

눈물을 흘리기도 하시고 그 병사의 두 손을 움켜쥐고 놓질 않으시네요.

자신의 아들은 지금 전쟁터에 있으니 그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요?

6, 25 전쟁이 끝난 지 10년 조금 지난 시기였네요.

전쟁을 겪으신 어른들은 전율과 공포와 안도를 동시에 느끼셨을 겁니다.

며칠 후 우리 학교에도 오셨습니다.

교장 선생님 훈시가 끝나고 단상에 올라서 엄청난 무용담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반에 사촌 여동생이 있어서 특별히 찾아주셨는데...

주머니에서 베트남 지폐를 꺼내서 보여주시네요.

구릿빛 얼굴에  정말로 멋진 용사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분의 무용담은 입소문을 타고 엄청 부풀려 하룻사이에 온 동네로 퍼져나갑니다.

우리들은 상상도 되지 않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1~2년 후 여기저기서 파월용사가 귀국을 합니다.

구름 인파가 모여 궁금한 것을 끝도 없이 질문합니다.

한참을 듣고 있더니 어떤 놈이 그런 말을 했느냐고 따집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들 하고 있다고 핀잔만 받았네요.

다시 몇 년 후 이제는 전쟁 영웅담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습니다.

소위 약발이 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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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장병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객지에서 처음 친구를 사귀었는데요.

저는 순진 그 자체라서 거짓이 없었답니다.

인사가 끝나자 그 친구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동네 가면 제일 크고 넓은 기와집이 있는데 그 집이 자기네 집이랍니다.

믿습니다...

자기 형님이 서울 가서 돈을 많이 벌어서 아주 부자가 되었답니다.

믿습니다...

자기네 큰아버지댁은 농토가 많아서 머슴이 몇 명인데 논이 너무 많아서 잘 못 찾아간다네요.

믿습니다...

자기네 외삼촌은 군인인데 계급이 장군이랍니다.

믿습니다...

저는 우리 집은 가난해서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해 가을 그 친구 아버지 환갑잔치라서 참석을 했습니다.

모두가 거짓이고 아버지는 이웃 부잣집의 머슴이셨습니다.

다음날부터는 서로가 고향 이야기는 금기시되었답니다.

 

나이 60이 다 되어 시골로 이사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외진 시골마을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이지요.

몇몇 집과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쌓으며 통과의례를 치릅니다.

어떤 아주머니 인지 얼굴은 잊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지금은 시골 살지만 서울에 아파트가 몇 채 있답니다.

자신의 아들은 박사이며 큰 회사에 다니고 있답니다.

딸들은 선생, 경찰이라네요.

다른 어떤 아저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큰 회사 사장까지 하고 시골로 이사 왔다네요.

어느 분은 아들 내외가 독일에서 캐나다에서 사업을 한답니다.

또한 사람은 아직도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시골집은 부인 명의이며 주말마다 내려온답니다.

명함을 받아보니 손이 떨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역전이 되었습니다.

왜들 그런데요.

세월이 가면 모두가 드러날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