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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내 고향 경천(5) [106] 본문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블로그입니다.
찾아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경천인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본적은 이적하지 않아서 경천리 62번지입니다.
[海州 人]으로 崔 相字 根字의 삼남으로 태어난 본인의 이름은 주민등록상 최인태[崔仁泰]이지만 족보에는 태식[泰植]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고향 어르신들은 태식이라 해야 알아보실 겁니다.
동문들은 인태라 불러야 알아볼 거고요. [태식은 해주 최 씨 좌랑 공파 31대 식자 돌림]
풍수는 잘 모르겠지만 계룡산 맑은 물은 경천 평야를 기름진 옥토로 만들어 넉넉하고 인심 좋은 동네였다.
뒷동산인 쇠산이 북쪽을 막아주고 동에는 치국산의 성벽이 지켜주며 남으로 괘등산의 푸근함이 용머리를 휘감고 돌아가고 배산임수의 형상에 용두천과 월암천이 그림같이 흘러간다.
길 건너 노성산의 산줄기는 석양빛의 아름다움을 서쪽 하늘에 그려주었다.
영남에서 한양 가는 길목은 문경새재를 넘어갔다지만 호남에서 한양가는 길목인 삼남대로 길이 용머리와 경천을 지나고 금대리 황새울로 해서 늘띠 고개를 넘어갔다.
지리적 여건으로 경천지역에는 경천 역참[敬天驛站]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경천에는 두 곳의 이문[里門]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랫 문인 용머리 방향은 전란에 소실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경천 교회 종탑 바로 옆에 있던 이문은 본인의 기억에 선명하다.
이문이란 동네를 지키는 문이며 대문 없이 기둥 네 곳에 기와를 얹은 평범한 건물이었다.
아마도 60년대 초에 화재로 하룻밤에 완전히 불에 타 없어졌다한다.
중학교 교문에서 계룡 초등학교 입구까지의 길[어사길] 구비 안과 삽작골을 지나 금대 2구 황새울과 하대리 원터를 지나간다.
춘향전의 이몽룡이 걸었거란 이유는 설득력이 약하다.
물론 호남에서 급제해서 금의환향하신 분이 없다고는 할 수가 없지만...
23번 국도는 전남 강진에서 천안 행정리 삼거리까지이다.
이 도로가 하마루를 거치지 않고 상월에서 경천을 지나 어사길로 이어져야 했다.
행정구역상 공주시와 논산시의 경계를 논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점기에도 월암리보다는 경천에 모든 행정기관이 소재했으나 해방 후 경천에 남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변전소 하나일 것이다.
계룡산 쌀 개봉에서 흘러내린 옥수는 신원사 중악단을 휘감고 흘러 양화리를 적시고 쳉면의 물레방아를 돌린 후 수로를 타고 흘러 경천리 동네를 지나간다.
때로는 도로를 따라 흐르고 누구네 집 뒷마당으로 흘러 경천 방앗간 근방에서 위로는 중학교 방향으로 흘러 경천 초등학교 교정을 지나 들녘을 적시었다.
이곳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은 장터를 지나서 경천 들녘을 적시는 젖줄이 되었다.
130년 전 녹두장군 전봉준의 농민군이 우금치 전투를 앞두고 집결한 곳이 경천 장터였다.
이들은 삼남대로를 따라 북상길에 머물렀던 것이다.
약 9,000의 군사가 우금치에서 전사했다니 경천 장터에서의 하룻밤이.......
고향을 버린 것이 아니고 본인 스스로가 떠난 것이니 어찌 잊을 것인가?
상봉에 사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고향 떠난 나그네는 오늘도 소식이 없구나.
다롱[달은] 고개에 뜨는 저 달은 내 마음은 아는 듯 수심만이 가득한데...
남포 소리 요란하여 눈떠보니 어느 사이에 물웅덩이가 [계룡, 경천저수지] 하늘을 품었네.
정녕 치국 산은 치국[恥]이란 말인가?
의자왕의 말로가 오늘도 원망스럽구나!
수원화성도 성[城]인데 치국 산성[양화 산성]은 무너진 돌덩이에 칡덩굴이 감싸주었네.
고향 그리워 잠 못 이루는 동향인은 부지기수이련만 모두가 대답 없는 메아리로 구나!
나이 들어감을 새삼 느끼면서 글로 남기려 합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희미한 기억과 풍문에 의해 쓰였음을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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