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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내 고향 경천의 추억(3) [103] 본문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블로그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내 고향 경천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입니다.
이곳이 나의 탯자리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도 합니다.
태어나서 17년을 살았습니다.
성밑 마을에서 살았지만 무엇보다 장터의 추억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장터를 지나야 초등학교에 갈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고 모친께서 장터에서 채소 장사를 하셨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장터 근방을 주막거리라 부르고 신원사로 가는 길목을 돌징이이라 불렀답니다.
돌징이는 돌우물 즉 돌 틈에서 물이 솟아나는 돌우물에 우물정자를 붙여 돌정이가 충청도 특유의 발음으로 돌징이 굳어 버린 듯합니다.
돌징이 가장 동쪽 그러니까 양화리로 들어가는 길목에 물레방앗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쳉면이라부르며 쳉면 방앗간이라 불렀습니다.
그 방앗간 바로 위에 저수지 둑이 건설이 되었습니다.
여기 방앗간은 자체 발전기를 돌려 아주 작은 전구를 달아 불빛을 내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거의 없어진 기와 집터를 추억합니다.
솟을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큰 연못이 있었고 연못 가장자리에 배롱나무가 고목으로 한그루 기억납니다. [우리는 간지럼나무로 부르기도 했었지요.]
그 안에는 안채가 옆으로는 별채가 있었던 기억 합니다.
성함이 김 씨라고 알고 있습니다.
[후에 공주 갑부 김갑순을 공부했습니다만 이곳 하고는 연관이 없는 걸로...]
돌징이 동네 삼거리에서 길을 잃으면 한참을 헤맬 정도였습니다.
삼거리 윗길로 나오면 경천 중학교가 반겨주고 아랫길로 나오면 쌍둥이 최 씨 아저씨가 운영하는 자전거포와 김인태 형님이 운영하던 철공소가 있었고요.
삼거리에서 뒷길로 가면 기와집 앞으로 해서 물레방앗간을 지나 양화리 계룡산 신원사로 접어 들어가는 길목이지요.
용머리에서 장터로 들어오려면 냇가를 건너면 왼편으로 도살 장터가 희미하게 보이며 상엿집은 오래된 버드나무 아래에 있었고요.
장터 입구 삼거리 우측으로 성밑을 지나 주내를 지나 연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지요.
삼거리 옆에는 정 씨 아저씨네 철물점이 장터에는 남궁 아저씨네 가게가 있었습니다. [과자가게]
장터에서 상보 안으로 나가는 길목은 우시장과 약장수가 약을 팔던 어 씨 아저씨네 집을 돌아갔지요.
이 근처에 대장간 2곳이 자리 잡았지요.
경천 국민학교로 빠지는 길목에는 약국도 있었으며 가마솥을 주로 팔던 이 씨 아저씨네도 있었습니다.
막걸리 만드는 양조장 앞에는 거창한 2층 집도 있었습니다.
성밑 마을에서 장터로 들오면 튀밥을 만드는 뻥튀기가 있었으며 다음으로 박 씨 아저씨가 앉아계신 고무신 장화를 때우던 장소를 지나면 우측으로 백씨 아저씨네 참기름집이 그 옆에는 만물상인 협동상회[최씨 아저씨네] 바로 옆에는 박씨 아저씨네 어물전[별칭이 맹꽁이 아저씨네]이 골목길을 지나면 왕근이 부친께서 운영하시던 포목점및 잡화점있었고 그옆에는 주류대리점[대부분이 소주] 또 그옆에는 이발소[서 씨 아저씨네] 그다음이 우대길 어르신의 고무신과 담뱃가게였지요.
그리고는 허 씨 누나의 미용실이 다음에 골목길에는 한의원이 있었고 그다음이 전춘자 부친의 쌀가게가 다음이 라디오 수리하는 소리사 그 옆에는 공 씨 아저씨의 양복점이 있었고 후에 문을 연 떡방앗간이 있었습니다.
설날 가래떡을 기계로 뽑아서 인기 짱이였지요.
다른 날에는 밀가루로 국수를 뽑았습니다.
친구 부친이 운영하던 건어물 및 제수 용품 가게가 그리고는 대폿집이 있었습니다.
대폿집 옆에는 신원 사들어가는 조금 넓은 골목길입니다.
장터에서 양조장을 지나면 신원 이발소가 있었으며 우물을 지나 골목길에는 의용소방서 건물이 있었습니다.
망루에는 수동으로 돌리는 사이렌이 설치되어있었습니다.
화재시나 위급 시에는 망루에서 사이렌을 울려 위급함을 모두에게 신속하게 알려주었습니다.
1960년대 중간 즈음에 우물 파던 최 씨 아저씨가 흙이 무너지며 매몰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때 사이렌이 위급함을 알려 많은 사람들이 달려가서 구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주변 마을에 크고 작은 화재도 신속하게 전달되어 수동 펌프 수레로 달려가서 화재를 진압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소방서 건물에서 가설극장을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옆에는 의상실 겸 수예점이 그리고 상여를 만들던 곳도 철공소와 자전거 수리점을 지나면 방앗간이 나옵니다.
이곳은 유일하게 전기 모터를 돌려 운영해서 아주 조용한 방앗간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곳에는 발동기를 사용해서 밤새 쿵쿵 소리가 아주 시끄러웠지요.
바로 옆에는 우리들 졸업 앨범을 만들어주던 사진관이 있었습니다.
맞은편에는 또 다른 양복점과 각종 양철 그릇과 물통을 때워주는 장 씨 아저씨네 가게가 그리고는 중학교 바로 앞이라서 문방구가 두 곳이 큰 버드나무 사이에 있었습니다.
오랜 역사의 중학교 건물과 100여 년의 역사가 있는 경천 교회 2층 건물이 있었습니다.
장터 마당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가설극장은 물론이고 서커스 및 약장수[판소리 가수들과 함께하는]가 그리고는 백중 장날에는 씨름대회가 열리기도 하였지요
경천 국민학교는 당시에 재학생이 1,000명이 넘어서 상성 분교를 추진하였습니다.
운동회날은 수천 명이 모였던 같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추억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겁니다.
너무나 아쉬운 것은 당시의 모습이나 풍경을 담은 사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기억이 생생해서 어느 정도 유추해서 이 글을 적어봅니다.
나중에 더 확실한 기억이 떠오르면 한번 더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경천이 고향이신 분들이 이 글을 보시면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기억 못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며 누락된 이야기도 많을 겁니다.
혹시 실명이 올라있어도 이해 바랍니다.
저는 경천 국민학교 19회 졸업생이며 성밑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현재 나이는 68이며 말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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