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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2편. [5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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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2편. [57]

현덕1 2020. 9. 2. 13:39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블로그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문화생활 이야기입니다.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후반까지의 어린 시절에 추억이라서 문화생활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합니다.

당시에는 스피커라고 해서 요즘의 케이블 방송 형태였지요.

이것도 사용요금을 받아서 가난한 집은 달지 못했고요.

전반기에 보리 한말, 후반기에 쌀 한말 정도를 내야 합니다.

마루 기둥에 매달아 놓으면 저 혼자 하루 종일 방송이 나옵니다.

껐다 켜는 기능이 있고 볼륨을 조절하는 손잡이 정도가 달려있었습니다.

거의 kbs 방송이 나왔고요 60년대 중반에는 미국의 소리 방송이 기억에 남고 월남전 소식이 떠오르네요.

임택근 아나운서의 스포츠 중계는 뭔 소리인지 전혀 몰라도 이겼다고 하면 마냥 좋아했지요.

낮 12시 55분에 시작하는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음악은 눈물 젖은 두만강이 집집마다에서 동시에 들리곤 했지요.

 

연속극은 삽다리 총각이 재미있었고 전설 따라 삼천리가 생각납니다.

특히 06시 30분에 전하는 월남전 소식은 어제 전투의 상황을 전했는데 베트콩은 수십 명이 죽었는데 국군은 몇 명의 부상자만 발생했다고 전합니다.

충남 청양의 구봉광산에 매몰됐던 사람이 보름만인가 구출이 되는데 새벽까지 이어지는 소식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습니다.

6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몇몇 집에서 라디오를 구입하더군요.

스피커가 아날로그였다면 라디오는 디지털 비슷한 성격이었을 겁니다.

라디오의 종류가 다양해서 손에 들고 다니면서 안테나를 길게 뽑아야 잘 들리고 했지요.

집 안방에 모셔두는 라디오는 직사각형의 기다란 모양이며 중간 아랫부분에 손잡이가 대여섯 개가 나란히 붙어있는 아주 멋진 스타일이며 배터리는 내장형이라 깔끔했습니다.

 

동네 아저씨가 소형 라디오를 사 오셨는데 이중간첩 이수근이 판문점을 넘어왔다는 소식을 전해주는데 아마도 수십 명이 모여서 함께 들었습니다.

특히 1,21 사태 소식을 들을 때는 무서워서 잠을 못 이루었지요.

청와대 근처까지 무장공비가 총을 쐈다고 하니 피난 이야기부터 시골 동네가 한때 난리 부르스를 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김신조 일당이 마무리되니 푸에블로호 피랍 소 식까 겹쳐지고 예비군 창설한다고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이고 어린 나이에 얼마 못 살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6,25 동란 15년 후의 일이니까요?

 

우리 동네는 규모가 큰데 인근 주변의 동네까지 합하면 인구수가 지금의 면단위가 넘어갑니다.

해서 여름철이면 서커스가 한 달 정도 공연하고, 씨름대회도 열리고 약장수가 한달정도 약을 팔고 판소리도 하며 공연을 합니다.

추석 즈음이면 가설극장이 개막되고 콩쿠르대회가 시끌벅적했습니다.

장날이면 약장수 구경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지요.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입장요금을 내야 구경을 하는데 누가 돈을 주나요?

거의 끝나가는 시간에는 문을 열어주는데 너무 늦어서 이것도 힘듭니다.

별로 볼 것도 없고요.

약장수 판소리 공연은 무료인데 어린 우리는 재미가 없었어요.

제일 인기 많은 것은 영화 다음이 서커스였습니다.

영화는 날마다 프로가 바뀌기 때문에 날마다 주제가 달랐지요.

엊저녁 영화 본 사람 주변은 애들이 많이 모이고 박노식이 신성일이 허장강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난리이었지요.

 

거의 흑백 영화였는데 어느 날에 빨간 마후라를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라고 광고를 하는데 어린이 입장요금이 5원인데 이영화는 10원을 받는다 하네요.

영화 포스터만 봐도 가슴이 울렁울렁 벅차오르는데 돈이 있어야 구경을 하지요.

할 수 없이 불량 청소년이 되어 남의 집 담을 넘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고물상이 두 곳이었습니다.

울타리가 엉성해서 살짝 들어가서 유리병[조금 큰 것] 하나 들고 나왔습니다.

다음날 낮에 집에 있는 것 가져왔다고 하니 10원 주시네요.

죄송합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공주군청 홍보실에서 공짜 영화를 상영해주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스크린을 걸고 흑백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유는~ 계룡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는데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정부의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1968년 계룡산은 국립공원 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지리산이 1호지요, 한라산, 설악산보다 앞섭니다.]

당시 보았던 섬마을 선생님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스포츠머리의 젊은 선생님이신데 어느 섬에 부임해 옵니다.

그는 월남전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고 죽은 동료의 부탁으로 섬에 자진해서 들어옵니다.

윤정희 역은 순수한 섬 처녀인데 아이를 업고 학교에 나오는 역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은 대사가 있는데요.

선생님이 섬 처녀에게 대변 검사를 하기 위해 봉투를 주는데 섬 처녀가 하는 말이 선생님 대변이 아니고 똥이지요?

 

어린 나의 눈에 비친 서커스의 어린 소녀들과 난쟁이들을 지금도 어제 일처럼 기억합니다.

이 아이들은 뼈가 없습니다.

높은 탁자에 올라서서 앞뒤로 몸을 구부리는데 박수소리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키 작은 난장이 아저씨의 연기는 더욱 놀라웠습니다.

불쇼도 하고요 누워서 자기 키만 한 통을 사정없이 굴리는데 가슴이 떨려서 혼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고아이고 어려서부터 억지로 식초를 먹어서 뼈가 물렁해졌다네요.

당연히 학교도 안 다니고요.

여기를 떠나면 다른 곳에 이런 고생을 한다네요.

 

백중 장날 열리는 씨름대회에서 1등 장사로 송아지를 받아간 아저씨 지금은 돌아가셨겠지요.

모래판에서 포효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늦은 오후부터 시작하는 씨름 대회 시작 전에 연습경기도 구경했습니다.

어른들은 오늘은 누가 1등이다 2등이다 미리 점을 치기도 했습니다.

 

1969년도인가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착륙하는 장면을 주먹만 한 흑백 tv로 보았습니다.

장터에서 주류 도매상을 하시던 분인데 장터 넓은 곳에 탁자를 놓고 그위에 tv를 놓은 후에 타원형으로 사람들을 앉게 했습니다.

아마도 수십 명 아니 백 명은 넘었던 같습니다.

저는 다행히 키가 큰 편이라서 또래 아이들은 잘 안 보인다고 하는데 그런대로 구경했습니다.

이때 화면은 간신히 물체만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충청도 산골 시골 구석에서 공짜로 tv구경을 할 수 있으니까요? 

 

콩쿠르대회는 노래자랑으로 추석날 저녁부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리고 다음 해에는 건넛마을 뒷동산 넓은 잔디마당에서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일등은 금반지인데 거의가 짜고 치는 노름판 비슷했습니다.

참가비 받아서 수지가 안 맞기에 1등은 정해 놓고 안주는 걸로 하였지요.

대신에 2, 3, 4, 5등은 무엇이든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흥행이 되겠지요.

 

누구든 어린 시절에 추억이 있겠지요.

저의 어린 시절 태어나서 17년을 살았던 공주군 계룡면 경천리였습니다.

계룡산 정기받은 하늘을 공경하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아직도 폐교는 안되었습니다.

계룡 초등학교 분교였는데 오히려 계룡 초등학교는 폐교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합니다.

세상이 너무 급작스레 변해서 모든 추억의 장소가 엉망이 되어버렸네요.

꿈속에 그리는 내 고향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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