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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마루보시 [263] 본문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T 스토리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마루보시는 일본어이다.
일본 회사의 이름으로 [丸星] 알고 있다.
하역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이며 당시에는 기계의 도움 없이 인력으로만 하는 고된 작업이기도 했다.
전국의 항만이나 기차역 또는 물류 기지 같은 곳에 영업장이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화물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이름이지만 우리는 힘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마루보시란 단어를 떠 올린다.
엄청난 화물의 물동량을 기준으로 보면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처리하기에는 역 부족 같지만 그 시절에는 가능했다.
본인도 그시절이나 1940년대에 태어났으면 마루보시 일원이 되었을수도 있을거란 생각도 해본다.
마루보시란 단어를 들어 보았다면 60대 나이 이상일것이다.
1930년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약칭 米倉]가 광복후 정부관리 기업체로 되고 1962년 한국운수주식회사와 합병 1963년 상호를 대한통운으로 변경하였다.
1968년 7월 동아건설주식회사 계열로 불하되어 민영화되었다.
1975년경으로 기억되는 일이 하나 있다.
경기도 평택읍내 살았는데 당시에 새마을 운동에 사용하라고 시멘트가 동네별로 나왔는데 우리 동네에는 대한 통운 카고 트럭으로 싣고 왔는데 엄청난 양이 도착했다.
그런데 하역 아니 하차가 문제였다.
시멘트 1포의 무게는 처음에는 42,638kg였는데 후에 40kg으로 변경하였다.
동네 어느 허름한 창고를 빌려 쌓았는데 하역꾼이라는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이장이 동네 젊은 사람들을 수배하였다.
포당 얼마인지 일당인지 기억이 없지만 아마도 수백포대의 시멘트를 옮겨 쌓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중간에 포장이 뜯겨서 시멘트 가루가 날리고 밤늦게 까지 계속되었다.
나중에는 배도 고프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며 한포대를 들고 나르기에 넘 힘들었다.
포기하면 빈손이라 죽기 살기로 통금 전에 끝낼수 있었다.
평택역에서 하역작업하는 사람들 모습을 날마다 지나가며 보았다.
기차로 실어오는 화물은 주로 시멘트이며 농번기 이전에는 비료 였다.
평택역은 기차 역내 위로 사람만 걸어다닐수 있는 구름다리 즉 육교가 설치 되어 있어 걸어 가면서 내려 보면 작업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었다.
이분들은 돈을 벌기위해서 하는일이라서 그런지 시멘트 2포대 정도 어깨로 메고 하역한다.
비료의 경우는 무게가 시멘트의 절반인 20kg이라서 그런지 아저씨들 어깨 위로 4포대 정도 올려서 움직인다.
모두가 달인급이라서 어깨위의 포대를 그냥 던져도 보기 좋게 차곡 차곡쌓인다.
돈벌이가 되지만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아니였다.
체격이 강골급이 되어야하며 건강한 남자들이 하는 일이다.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되어 터지는 순간에 살아 남은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폭발장소와 가까운 거리였는데 화물선 맨 아랫칸 안쪽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않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유는 원폭은 폭발의 힘이 수평과 공중으로 퍼지게 되어있기에 지하 같은 깊은 곳에는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중의 방사능이 가라앉을수 있기때문에 피해가 전혀없다고 할수는 없을것이다.
이들의 직업이 힘든 하역 노동자였기에 살아 남았다고 한다.
아마도 선상이나 육지에 있었다면 흔적도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고향에 선배 한분이 한동안 안보이더니 어느날에 고향에 내려왔더군요.
우리 동네에서는 힘이 장사여서 시골에서 머슴살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였답니다.
얼굴 모습이 많이 수척해져있더라구요.
힘든 일을 많이 해서 몸도 약해지고 더 이상 일을 할수 없어 내려왔답니다.
인천 항만에서 하역팀에 들어갔는데...
맨입으로 안되어 돈을 주고 들어갔지만 자신의 능력이 안되더랍니다.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장사들만 모여있어 힘들더랍니다.
하루 종일 쉬는날 없이 강행군을 해야한답니다.
그래야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라네요.
이것이 항만의 마루보시입니다.
건축 공사 현장에는 무거운 짐만 날라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장용어로는 곰빵이라고 부르지요.
정확한 어원은 모르구요.
일본어도 아니고 우리말도 아닌것 같습니다.
곰빵,곰방,양중이라부르지요.
이중에 양중은 기계 작업에 중량물[重量物]을 운반하는것을 줄임말 같습니다.
대부분이 시멘트나 벽돌또는 타일이나기타 무거운 자재를 기계를 이용할수 없을때 사람의 힘으로만 옮기는 작업을 말합니다.
이들은 정해진 일당이 아니고 옮겨야할 물량을 계산해서 하기때문에 정해진 퇴근 시간은 없습니다.
끝나는 대로 퇴근입니다.
건축 현장의 마루보시일겁니다.
본인도 건축 현장에서 조적공으로 몇년간 몸담았습니다.
당시에는 기계보다 사람의 힘으로 옮겨 작업을 하였습니다.
송판이나 합판으로 만든 벽돌 전용 지게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현재의 벽돌은 평균 4~ 50장 정도 지게 올리고 올라갑니다.
3층이나 그이상 6층 8층도 가능합니다.
보통 3~4층은 직접 올라가지만 그이상은 중간에서 교대로 이어갑니다.
그런 방식으로 하면 수십층까지도 가능한 일이지요..
이들은 힘들지만 현장에서 다른 일은 하지 않으려합니다.
기억에 남는 사람이 몇분이 계시다.
박씨 형[兄]이 두분이신데 존경하는 곰빵꾼이셨다.
깊이 들여다 보면 가슴 아픈 현실도 감추지 못할것이다.
두 사람다 배움이 짧다.
그리고 가진게 없다.
가진것이라고는 튼튼한 두다리와 어깨 그리고 순한 마음씨가 전부였다.
너무 열심히 일하고 새벽부터 부지런히 쉬지 않고 일하신다.
세월이 좋아지니 당연 현장에 기계식 장비와 크레인 사용되기 시작된다.
일반인 같으면 대 환영 할일이지만 두사람은 별로 좋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이미 수년간 몸에 밴 행동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현장에서 지게를 지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해야하는데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모양이다.
암튼 미스테리 같은 두사람이였다.
두사람이 돈이 조금 있었으면 마루보시에 가서 돈을 많이 모았을텐데 말이다.
마루보시에 들어가려면 소위 권리금인지 보증금인지 큰돈이 있어야가능했다고 한다.
후에 마르보시 출신을 만났는데 건강이 안좋아서 중도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돈은 조금 벌지만 그만큼 몸이 망가진다고 했다.
마루보시 출신들은 탄광에서 일하시는 광부하고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땅속에만 안들어갈 뿐 힘든 노동과 분진이나 먼지를 그대로 마셔야했다.
그것도 가뿐 숨을 몰아 쉬면서 말이다..
기차역의 하역작업은 유개 열차에 화물을 싣고 오는데 창문은 없고 양쪽으로 출입문만 있는 구조이다.
시멘트의 경우는 1포대만 터져도 그 가루가 엄청난 양인데 마지막 하역할때까지 바닥에 쌓여있는 양이 많이 있기도 한다.
비료 역시 한두개만 터져도 발로 밟고 다녀서 금방 가루로 변하기도 한다.
그 모든 먼지나 분진을 그대로 들이 마시는 것이다.
노동의 강도가 높아서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고 한다.
만리장성의 성벽이나 유럽의 성이라 부르는 건축물 그리고 앙코르 와트,피라미드 같은 불가사의 건물을 편한 마음으로 바라볼수가 없다..
오늘날 유물이라면서 관광으로 편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당시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알고나 있을까?헬기가
지금도 중국의 높은 산길에는 짐을 나르는 짐꾼들이 있으며 사람을 태워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전세계 곳곳에서는 지금도 사람의 힘으로 무거운 짐을 높은곳으로 나르는 일을하고 있을것이다.
일본의 북알프스 산행중에 만난 작은 미니 헬기가 산장에서 산아래로 하루에 수십번씩 물건을 실어 나른다.
1인승 헬기인데 드럼통 1개 매달고 올라오면 사람이 기다리다 고리를 풀어 주면 다시 날아 내려간다.
일본에서는 지겟꾼이나 짐꾼을 만나지 못했다.
키나바루 산 등정할때도 포터[짐꾼]와 동행했으며 산장에서 사용되는 모든 자재와 먹을거리까지 사람의 힘으로 등에 지거나 메고 나른다.
중국의 산에서는 특별할것도 없다.
워낙 자주 목격되고 심지어 이들과 함께 산에 오르기도 한다.
설악산의 마지막 짐꾼이 아직 남아 계신다.
마루보시하고 관계는 없지만 모두가 같은 일을 하며 두다리와 두 어깨로 이고 지고 메고 나른다.
중장비라고 부르는 기계들이 많이 나와서 인간들을 도와주기에 편하게 살고있다.
아마도 이앙기라고 하는 모심는 기계가 없었다면 정형외과 병원은 지금보다 몇배나 더 필요했을것이다.
굴삭기 역시 사람들의 허리를 보호해주는 아주 고마운 기계임에는 틀림이 없다.
항만에는 각종 크레인이 설치되어 사람을 대신하여 일하고 있다.
2024년 현재는 쳇gpt 또는 지능형 ai 가 출현하여 세상을 무섭게 변화시키고 있다.
앞으로는 전세계 각국의 학교 교육은 이제 필요없는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아니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열어가고있다.
육체 노동은 너무 힘들어서 기계를 대신해도 되지만 뇌의 노동이 힘들어서 저런 기계를 만드나 싶은생각이다,.
수백년후 인간은 아무것도 할필요가 없으며 단지 입만 벌리고 있으면 로봇이 다해줄것으로 예상한다,
심지어 아기를 만들고 낳는 일도 기계의 힘을 빌릴것이고 기르고 양육하는 일도 로봇이 다해줄것이다.
마루보시,중노동 육체노동이란 단어는 사전에도 전설의 고향에도 등장하지 않을것이다.
먼 훗날의 일이 아니고 당장에 코 앞에 닥친 일이라고 하고 싶다.
만리장성,마추픽추,앙코르와트,피라밋 그외 크고 작은 성들이 있다.
건설 당시 수많은 인명 피해도 있겠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할때도 있을것이다.
이제는 육체의 노동이 아닌 헬스장에서 먹고 남은 인체의 기름을 짜느라 더 열성인 세상이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는 편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다행이다.
과거도 미래도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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