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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하루 일당 [252]

현덕1 2024. 1. 31. 19:55

최인태의 세상이야기 T스토리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경험한 이야기 입니다.

대한민국의 성인 남자들 하루 일당의 변천사일겁니다.

1971년 기준이며 기술없는 조공 일당부터 시작합니다.

조공이란 기술 없이 현장에서 아무일이나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보통은 잡부 또는 조공, 조력공 속된 표현으로는 뒤에서 도와준다해서 뒷모두 또는 데모도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들은 일정 기술이 없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서도 작업이 가능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는 건설현장만 해당합니다.

 

1971년도 봄에 경기 평택시 시장 로터리에서 당시 공제 병원 앞까지 보도블럭을 걷어 내고 하수 관로 콘크리트 흄관을 매립하는 현장입니다.

당시는 중장비가 없어 100% 사람 손으로 수작업을 할때입니다.

보도블럭 걷어 내고 삽과 곡갱이로 흙을 파낸후 흄관을 밀어 넣은후 다시 흙을 덮도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흘러 내리는 하수를 그대로 둔채 하는 작업이라서 냄새가 지독했습니다.

지금도 꿈에서 맡을듯한 그 독한 냄새말입니다.

당시 하루 일당은 5백원이였습니다.

이듬해인 1972년 이웃집 아저씨 따라 목수 조공을 하였습니다.

몇년 따라다니면 목수일을 가르쳐준다고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루 종일 일본말을 하니 알아 들을수가 없더라구요.

딱 하나 망치와 톱은 알겠더군요.

여기서 온갖 잡일 다하고 5백원 받았습니다.

당시의 짜장면은 한그릇에 50원정도이니까 일당의 약 10% 이네요.

 

6월 어느날 부터 초등학교 증축 현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일을하게 됩니다.

시멘트 벽돌인데 당시는 규격화 전이라 시멘트 벽돌이 지금보다 약 30% 정도 더 컸답니다.

그러니 무게도 상당했구요.

아침 부터 저녁 안보일때 까지 지게질합니다.

당시 600원을 주네요.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 시멘트 벽돌을 지게에 지고 운동장을 지나 화단 계단을 오른후 당시 2층 건물로 올라가야합니다.

더운날 비오듯 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거리며 벽돌을 내려놓고 돌아서기 무섭게 기술자 아저씨들이 쌓아버리네요.

우리가 다시 올라올때 까지 시원한 그늘에서 쉬었다 한다고하네요.

그런데 이사람들 일당이 우리의 두배인 1,000원을 받는답니다.

정말로 요즘말로 멘붕이 옵니다.

돈은 두배인데 그것도 그늘에서 편하게 너무 부럽더군요.

다른곳 안가고 그곳에서 가을 지나고 겨울 올때 까지 죽어라 지게질했습니다.

물론 틈틈이 벽돌 쌓는 기술도 훔쳐보며 배웠습니다.

기술자 아저씨들이 안가르쳐주네요.

소리만 지르고 욕도 아주 쌍욕을 달고살더군요.

 

겨울 지나고 1973년 봄이 왔습니다.

다시 건축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이제는 벽돌 지게는 넘어섰습니다.

초보 기술자입니다.

일본말인지 초보는 한빠라고 부르네요.

초보라도 일당은 약 700원으로 올려주네요.

그해 가을에 완전한 기술자 대우로 1,000원 주더군요.

벽돌쌓는 일을 전문용어로 조적공,벽돌공[造積工,壁乭工]이라 부릅니다.

당시에는 현장에서 도면을 볼줄모르는 기술자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도면 풀이 방법 부터 배웠습니다.

1977년군 생활하면서 당시 2,500원 받았습니다.

1978년 경상남도 마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이곳은 겨울 날씨 따듯해서 겨울철에도 작업이 가능해서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일당을 하루 5,000원주네요.

당시에도 조공은 기공의 약  50% 절반 수준이였을것으로 기억나네요.

 

세월이 흘러 2007년 하루에 기공 일당 약 13만원이 마지막이였습니다.

2005년 4월 기준으로 건설 현장을 떠났습니다.

직장에 취업해서 월급을 받았습니다.

물론 일당보다는 적었지만 한달 수입으로 보면 적은 돈은 아니였구요.

2007년 조공의 일당은 직능별로 편차가 생겨나네요.

예전에는 조공이라면 거의 비슷한 일당이였는데 말입니다.

조공은 기공과의 차이가 약 60%대까지 올라왔습니다.

하루에 약 7~8만원선으로 기억합니다.

 

현재 2024년에 직능별로 편차는 더 벌어져서 타일공이나 특수직은 하루에 약 40만원을 호가한다네요.

조공 역시 편차가 있구요.

일반 잡부는 약 15~18만원 정도 일겁니다.

2024년 현재 조적공은 약 평균 30만원선으로 알고있습니다

미장공이나 다른 직종과도 큰 차이는 없을듯하구요.

지금 제가 하는 일 역시 30만원 정도 합니다.

제초작업및 벌목작업입니다.

이 두가지 작업은 교통비, 식대, 연료비 포함 가격입니다.

 

약 53년만에 5백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되었네요.

당시의 물가와 현재의 임금을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을거 같네요.

그당시부터 지금까지 단순 잡부라면 아직도 평균 16만원정도 받을것 같네요.

여기의 금액을 모두에게 적용할수는 없구요.

제가 경험한 수치만 적어보았습니다.

결국 나의 임금이 올라가면 좋지만 그외 모든 물가 역시 따라 오르기때문에 특별한 메리트는 없을겁니다.

하루 하루 일당으로 평생을 살아왔기에 거의 맞는 금액대이구요.

제 인생 역시 별볼일 없는 하루벌이였습니다.

그래도 억울하고 후회는 없답니다.

그냥 내 인생이였으니까요?

단순한 내 삶이며 나의 행로이기에 어디에 비교할 필요성도 없을거구요.

 

다른 사업을 해서 한번에 몇백만원 몇 천만원을 벌었다해도 큰 변화는 없을겁니다.

많이 버는 만큼 거기에 맞는 소비 형태를 유지했을거니까요?

즉 한달에 천만원을 벌었다면 그만큼 맞추어 살아야했으니까요?

어쩔수 없는 자기 변명 같지만 지족상락[知足常樂]의 마음으로 살아왔거든요.

이정도면 나에 그릇에 알맞게 담겨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넘치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였을 것이구요.

차라리 빈이락[貧而樂]이 더 좋았으니까요?

어디 까지나 자기 변명만 늘어놓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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