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형제의 정. [81] 본문

오늘의 이야기.

형제의 정. [81]

현덕1 2020. 12. 21. 20:29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블로그 입니다.

찾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1954년 7월 초 어느 날 공주군 계룡면 경천리 62번지에서 세상에 태어났다.

초복을 며칠 앞둔 날이어서 날씨가 더웠을 것이다.

전쟁의 화마가 물러간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모든 것이 궁핍했을 것이다.

9남매의 6번째이자 아들로는 3남이다.

조부모님 내외분이 계셨으며 막내 작은 아버지가 계셨다.

조모님이 어머니 보다 4살 어린 작은 아버지를 낳으셨다.

몇 년 후에는 막냇동생까지 합해서 13명이 한집에 살았다.

 

농사가 천직이신 선친은 장남으로 강점기에는 징용으로 일본의 탄광에서 고생하셨다.

화재 사고로 피부에 [다리 부분] 흉터가 많으셨다.

사고 후유증으로 노동력의 일부를 잃으셨지만 아무런 보상도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

조부님이 독자[외아들]라서 선친은 효도를 하셨다.

아들 6형제를 [딸두명] 잘 키워내셨다.

가난했지만 인심을 잃지 않고 손님 많은 집으로 소문이 날정도였다.

 

조부님은 5남매를 두셨다.[ 고모님은 1분으로 외동딸]

명절날과 제삿날은 우리집이 큰집이라 북적였다.

설날은 사촌형제들 모두 모이고 어른들께 세배를 올렸으며 동네 집집마다 찾아가서 세배를 드렸다.

부유하지 못해서 거의 초등학교에 만족했으며 막내 작은 아버지와 큰 형님과 사촌형님은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치셨다.

셋째 숙부님은 6,25 참전 용사로 상이 군인으로 불편한 일생을 보내셨다.

 

사촌형제가 11명이지만 현역2명과 단기사병 6명이고 나머지는 보충역으로 병역의무를 마쳤다.

특히 큰형님은 우리 집안의 기둥이며 절대적인 존재로 남길 바랬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와 후손들의 앞날을 이끌어 가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같은 형님으로 생각하며 어려워했다.

 

모든 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형제들 모두 성장해서 결혼해서 분가하니 모두가 힘들고 어렵게 생활한다.

아름다운 미풍양속에 보기 좋은 동기간의 우애는 이미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배우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한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점은 보은 알고 은혜를 생각하며 서로 도움을 주는 일인데.

 

세월이 흘러 내 나이 67살에 큰 형님이 별세하셨다.

바로 위에 형님은 이미 23년전에 세상을 등졌다.

부고를 듣고 갈등이 생겼다.

조문을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였지만 남은 형제들을 생각해서 하룻밤 머물고 장지에 가지 않고 돌아왔다. 

본인 역시 수양이 짧고 덕목이 부족하고 가슴이 좁아서 더 이상은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어린 시절에 생각했던 것이 허무한 꿈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미천한 몸이라서 스스로가 파헤쳐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어디까지나 나만 손해보고 살 수는 없었다고 자부한다.

이제는 모든것을 수습할 수도 원점으로 돌릴 수도 없게 되었다.

홀로 쓰린 가슴을 안고 감내할수밖에는 ..........

 

갈대는 흔들리지 않고 싶지만 바람이 그냥 두지 않았다.

가지 많은 나무도 가만있으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나 역시도 우애를 지키며 흔들림 없이 살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이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원망해도 소용없고 후회한들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내려놓아야 내가 편한 일인가?

그렇지만 이것이 그렇게 쉽게 내려갈 일인가?

 

 

'오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만의 스타일[음식] [83]  (0) 2020.12.29
잘 만나야 한다. [82]  (0) 2020.12.25
개~ 혀~ [80]  (0) 2020.12.18
나이 들어간다는것. [79]  (0) 2020.12.13
가난한 사람.[78]  (0) 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