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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라떼[때] 는? 4편 [73] 본문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블로그입니다.
찾아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보릿고개 이야기입니다.
보릿고개는 네비도 안 가르쳐줄 겁니다.
미아리 고개 근방이라는 사람도 있고 무악재 고개 넘어에도 있다고 합니다.
산이 험악한 함경도 지방의 어느 고갯길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고개가 아니고 사람이 먹는 식량 문제의 이야기입니다.
1970년대 초중반에 통일벼가 본격 생산이 되면서 고개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쌀밥이 탄수화물 덩어리라서 일부러 기피하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서양 음식에 길들여져서 보릿고개의 의미도 무의미합니다.
어느 가수가 보릿고개라는 노래를 불렀더라고요.
크게 가슴에 와 닿지는 않네요.
그 당시에는 먹고사는 문제였는데 아니 죽고 사는 문제이기도 하였지요.
지금은 그저 단순하게 돈벌이용으로 부르는 것 같아서 서글퍼지네요. [리메이크 가수들]
긴 긴 겨울을 보내면서 그동안의 양식은 줄어들고 거의 바닥인데...
보리밭에는 아직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고요.
초근목피에 매달리다 보면 보리밭 한쪽이 누렇게 변해가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토해냅니다.
그래서 뒷집 아저씨는 일부러 양지바른 언덕 비탈밭을 가로 길게 만들어 보리를 경작합니다.
저 아랫 밭의 보리는 아직 청춘이지만 이곳의 보리는 가을날에 은행잎 같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보리의 이삭이 여물어지기 시작하면 성냥 한통 들고 나와서 보리 목을 여러 개 잡아 뺀 후 산속으로 들어가서 불에 구워 먹는 이른바 보리 서리를 합니다.
이때 입 주변에 증거가 확실히 남아서 곤란하지만...
보리밭 주인이 보고도 모른척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제 나이 70을 바라보지만 아마도 환갑 이전이라면 보릿고개가 그렇게 실감 나지는 않을 겁니다.
흥부네 집 아이들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답니다.
그렇듯이 우리들도 항상 먹을 것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맸답니다.
먼저 반기는 것은 찔레나무의 햇순입니다.
산아래 비탈진 곳이나 냇가의 둑방에 많이 있었지요.
이나무도 겨울에 아궁이용으로 베어지면 별로지만요.
그다음이 아카시 꽃이고요.
감나무의 꽃이 떨어지면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주워서 말린 후 먹으면 달달하지요.
이때쯤이면 새집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새알을 먹기 위해서지요.
집에서 닭을 키우지만 달걀은 모두 장마당으로 가져가서 돈하고 바꾸느라 우리는 먹을 수가 없었답니다.
초 여름이 되면 냇가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아서 불에 구워 먹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냥 장난 삼아 먹는 수준이랄까요?
누에 치는 집에서 산속의 밭에 뽕나무를 심어 놓으면 오디가 많이 열립니다.
오디를 따 먹으려 뽕나무 밭에 들어갑니다.
이것을 먹게 되면 입술 주위가 아주 검게 물들지요.
한여름에는 옥수수 수확 후에 줄기를 먹는데 껍질을 벗기고 몸통을 씹으면 약간의 단물이 나오지요.
잘못하면 입술에서 피가 흐르기도 합니다.
들판의 논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 남의 논이지만 보는 내내 행복한 마음입니다.
이제 보릿고개도 내리막 길이고 감자와 고구마 등 온갖 잡곡이 집에 들어차게 되지요.
어린 나이지만 남의 집에 일을 하러 가면 일당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하고 100원 정도 아님 80원]
일한다고 그 집에서 하루 3번 주는 쌀밥이면 그만입니다.
고깃국도 없이 그냥 콩나물 국에 고봉으로 퍼주는 하얀 쌀밥이 영원히 못 잊을 맛이었지요.
추수가 끝나면 시집 장가가는 집이 몇 집이 있었고 어르신 환갑잔치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애들이라서 손님 대접은 고사하고 완전 찬밥신세였지요.
아이들을 따로 챙겨주지는 않았답니다.
잔칫집 뒷마당에 솥단지 걸고 국수를 삶아내지요.
이때 울타리 밑으로 몰래 들어가면 누구 엄마는 자기네 아이들만 국수를 말아주는데.
울 엄마는 집으로 가라고 손짓을 하십니다.
잔치하는 집이 넉넉하지 않아서 음식이 항상 부족해서 그랬을 겁니다.
그래도 넉살 좋은 친구들은 술상이나 밥상에 남은 음식을 잘도 주워 먹는데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고...
다락방이나 창고 안에서 과방 보는 아저씨가 그렇게 부러웠으며 나도 어른이 되면 무조건 저 아저씨처럼 과방을 봐야지 하고 결심을 하고 맹세를 하였습니다만...
설날이 오면 최소한 떡국은 먹습니다.
그 외 세뱃돈이나 선물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고요.
동네 집집마다 한집도 빠지지 않고 세배를 다니지만 애들한테는 음식을 내어 주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딱 한집만이 다식을 몇 개씩 꼭 주었답니다.
그래서 아침나절에 한 번가고 점심 먹고 옷을 바꿔 입고 한번 더 갔습니다.
그 집 어르신 분명 알고 계셨을 텐데 모른 척 넘어가 주셨습니다.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양지쪽의 땅이 녹기 시작합니다.
이제 산으로 칡뿌리 캐러 올라갑니다.
1960년대 산에는 칡덩굴도 귀했습니다.
칡뿌리를 찾아 산을 한참이나 헤매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국가에서 지정한 유해 수종으로 제거 대상 1순위일 겁니다.
경칩이 지나면서 개구리울음 소리가 그렇게 반갑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개구리 뒷다리는 단백질 보충에 최적이면 불에 구운 후에 왕소금에 찍어 먹어보면 천하가 다 내 것 인양 부러울게 하나도 없었답니다.
버려지는 음식, 남아도는 식량, 처지 곤란한 먹거리, 보관비도 안 나오는다는 정부 양곡중에 쌀이 제일 골치 아프답니다.
금년에는 흉작에 쌀 재배 면적이 역대급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쌀은 골칫덩이랍니다.
정부 보관미가 너무 많아 서라나요.
조조나 유비가 전쟁터에 눈물을 흘리는 일은 병사 죽어서가 아니고 식량 부족 때문이라지요.
군량미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으니까요?
현재의 군량미는 쌀보다 밀가루 쪽으로 기우는 느낌입니다.
저는 76년도 군량미를 소비했던 1인입니다.
쌀보다 보리가 더 많았고요.
지금도 못 잊을 그 시절 군대 짬밥이 생각나네요.
아주 어릴 때 동네 골목을 뛰어가면 만나는 어른마다 야단을 치십니다.
야들아 이놈들아 배 꺼진다...
살살 다녀라...
20살이 될 때까지도 짜장면, 달걀프라이, 통닭이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먹어보진 못했습니다.
지금은 무얼 먹어도 살찌는데, 안되는데, 열량이 얼마인데 그만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정말로 배부른 소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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