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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찬바람 불어오면 [183] 본문
최인태의 세상 이야기 T스토리입니다.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입동이 지나고 소설이 다가오는 11월 하순입니다.
저는 체질상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합니다.
물론 두 계절 모두 좋다 나쁘다는 아니고 단지 추위에 강한 편이라서요.
모든 것이 얼어붙는 계절인 겨울이 좋은 이유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이랍니다.
눈 내리는 모습이 좋고 [자동차 운전에는 힘들지만...] 눈 쌓인 세상이 너무 좋네요.
이제 중년을 지나 노년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부담 없는 일상을 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 고향에서는 이 시기에는 가을 타작을 끝내고 곧바로 보리 파종을 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추수가 끝난 논에 듬성듬성 쟁기질을 해놓은 후 보리 낱알을 던져 놓고 괭이나 쇠스랑을 이용하며 흙을 덮어 주면 됩니다.
추위가 오기 전에 새싹을 틔운 후 월동을 하며 이른 봄 따스한 햇살에 폭풍 성장합니다.
눈이 녹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 보리밟기가 시작됩니다.
한때는 학생들을 동원하여 일명 인해전술처럼 밟아 나가는 일이였지요.
보릿고개 걱정 없게 얼른 얼릉 자라거라.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지붕을 새로 얹는 일이지요.
초가지붕은 특성상 매년 새로 교체하거나 덧씌우기를 해서 보강을 해줘야 합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기 전이라서 한두 집 빼고는 모두 지붕을 새로 합니다.
얼마 전 탈곡을 마친 볏짚을 모아 어른들이 마당에 앉아서 이엉을 엮고 계십니다.
볏짚을 한 움큼 정도 잡아서 계속 이어서 두루마리로 묶어 나갑니다.
사다리 타고 올려야 하므로 너무 무거워도 안되기에 적당한 길이에 마감을 합니다.
초가지붕의 크기에 따라 다섯 줄 정도인데 그 이상되는 집도 있을 겁니다.
맨 위에 얹는 용마름[우리 동네는 용고 새]은 조금 특별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양방향으로 빗물이 새지 않고 흘러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엉 얹기가 끝나면 새끼줄을 이용하여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매어주면 끝이 납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싸리비를 이용하여 전체를 쓸어내리면 완성이 됩니다.
기와집이나 함석집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지붕을 새로 하지 않아도 되고 이 집들은 부잣집이었거든요.
이제는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야 합니다.
난방이나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며 소 먹이인 여물을 끓이려면 많은 양의 나무가 소모됩니다.
그 시절에는 모든 산들이 벌거숭이 민둥산이었지요.
산에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들이 모두 잘라가서 나무가 없습니다.
먼산 나무는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나이가 어려서 갈 수 없으니 나무라기보다 말라비틀어진 풀잎을 베어 오는 정도였습니다.
어른들은 아침 일찍 지게를 지고 계룡산으로 먼산 나무를 하러 줄지어 걸어갑니다.
이른바 알지게인데 고구마 몇 개를 매달고 [점심용] 힘들게 오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산중의 중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그 나무들을 갈취해갑니다.
당시는 5,16 혁명정부에서 깡패 소탕작전을 펼쳤는데 자유당 시절의 건달과 주먹들이 산사로 숨어들었기에 가능한 일로 추측해봅니다.
동네 어른들이 역으로 작전을 펼치는데 한밤중에 절의 뒤편에 쌓아 놓은 나무 더미를 훔쳐오는 일이었습니다.
들키지 않으면 낮에 힘들게 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나무를 가져올 수가 있었답니다.
다음날 중들을 피해 멀리 돌고 돌아오는데도 중들이 따라오자 나무 지게에 불을 붙이는 겁니다.
너도 못 가져가고 나도 못 가져가고 말입니다.
그런 일도 1968년 계룡산 국립공원[지리산에 이어 내륙 2호]으로 지정되면서 끝나게 됩니다.
추석이 지나 찬 바람이 불면 시골집 모든 문짝을 떼어 창호지[문종이] 새로 바르는 일이 시작됩니다.
문살에 붙어있는 묵은 종이를 모두 떼어내야 합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입니다.
풀을 바른 후 간격을 맞춰 다시 바른후 바람에 말린 후 다시 부착합니다.
특히 안방 출입문에는 작은 유리 조각을 붙여 밖이 보이게 합니다.
손재주 있는 집들은 나뭇잎이나 꽃잎을 말린 후 창호지 위에 펼쳐 놓고 다시 겹쳐 바릅니다.
아주 예쁘고 멋있고 아름답습니다.
이 시기에는 솜틀집도 덩달아 바빠집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박물관에 있으려나요.
묵은 솜이불 속의 솜들이 뭉쳐있어 다시 풀어 펼쳐놓은 후 천이나 헝겊을 덧대어 다시 솜이불로 태어납니다.
목화밭에서 솜뭉치를 수확해서 솜과 씨앗을 분리합니다.
모두가 수작업이라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렵고 힘든 작업입니다.
누나들 시집갈 때 원앙금침을 새로 만들 때 사용한답니다.
이때는 동네 할머니들이 촐출동하시더군요.
배추밭에도 가을이 깊어갑니다.
찬서리에 밤새 떨었던 배춧잎은 아침 햇살에 하얀 솜털 옷을 내어줍니다.
장독대에서 가장 큰 대장 장독에는 하얀 소금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지게에서 내려진 배추들은 한 몸이 두목 세목으로 갈라져 소금 세례를 받고 잠시 잠이 듭니다.
다음날 아침에 찬물 세수를 마친 후 빨간 고춧가루를 덮어쓰고 항아리 안 깊숙이 동면에 들어갑니다.
우리 엄니는 자그마치 한 접 이상 [100포기]의 김장 김치를 담급니다.
당시에는 액젓은 없었고 부잣집에서는 새우젓을 넣었을 겁니다.
우리 집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내는 우리 엄니 표 김장김치였습니다.
한 겨울에 먹는 동치미 국물에 살얼음이 떠있었습니다.
우리는 동치미는 관심 없고 그저 경쟁적으로 살얼음만 떠먹었습니다.
가을 어느 날에 아버지는 수수깡을 이용하여 긴 용 모양으로 무언가를 만드셨습니다.
그 끝에는 볏짚을 둥글게 만들어 단단히 묶어 매었습니다.
적어도 방 3개는 통과해야 하는 길 이인만 큼 약 7~8m 정도 되었을 겁니다.
이때 어른들 몇 명이 함께 도와서 해야 합니다.
방법은 굴뚝이 있는 집 뒤편으로 가서 임시 막이용 벽돌을 허물고 그 구멍으로 계속하여 집어넣습니다.
그리고는 당겼다 다시 밀고 몇 차례 반복합니다.
이때 반대편인 부엌의 아궁이 속을 한 사람이 지켜봅니다.
그리고는 고물 개를 이용하여 검은 재를 계속 긁어냅니다.
이른바 한국식 굴뚝 청소 아니 구들고래 청소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재들이 방 구들 아래 고래를 막아서 연기나 열기가 들어가지 않아 겨우내 방바닥이 뜨거워지지 않거든요.
마지막으로 개자리의 재를 퍼낸 후 다시 흙으로 막아 주면 됩니다.
작업이 끝나면 다른 집으로 가져가서 사용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청소를 마쳐야 합니다.
아마도 해마다 하는 연례행사가 아닐까 합니다.
찬바람이 불고 나면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동장군이 찾아듭니다.
우리는 다른 도구를 또 만들어야 합니다.
우선은 소나무 둥치를 깎아 둥글게 만든 후 맨 아랫부분에 쇠구슬을 박아 넣으면 되는데 문제는 쇠구슬이 없다는 겁니다.
이럴 때는 경천의 자전거포[수리점]에서 눈치를 보며 빙글빙글 돌아다닙니다.
자전거 뒤 체인 속에는 작은 쇠구슬이 숨어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아저씨가 주질 않거든요.
흔하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용케 하나 주워오면 팽이 만들기는 끝나는 것이지요.
다음에는 썰매를 만들어야 합니다.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합니다.
나무는 뒷산에 가서 산주 아저씨 모르게 베어 오면 되는데 문제는 못과 얼음면에 맞닿는 철사가 없습니다.
철물점에서 파는데 문제는 돈이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훔치거나 집에 어딘가에 박혀있는 대못을 몇 개 빼내어 사용합니다.
철사는 고물상 집에 어물거리다가 조금 훔쳐옵니다.
아마도 주인아저씨가 알고도 보고도 모른 척해준 것 같습니다.
동장군이 밀려오면 뜨끈뜨끈한 방 안에서 뒹굴어야 제맛인데 어린 시절에는 그 추위에도 밖으로 나가 놀았습니다.
땅이 얼어도 구슬치기[우리는 다 마치기로 불렀습니다]를 하고 썰매를 신나게 타고난 후에는 불장난을 합니다.
춥다고 절대로 웅크리지 않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눈 내리면 눈싸움에 토끼몰이도 합니다.
토끼를 잡은 경험은 없지만 하루 종일 눈밭을 뛰어다니는 것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찬바람 불고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면 어른들은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저의 어린 시절은 신나고 즐거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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